[김도열의 테크 오디세이] 인쇄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사유를 퇴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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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읽을거리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저 훑어볼 뿐, 무언가를 진지하게 머릿속에 담아두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성의 종말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은 책 때문에 머리가 나빠지지 않았다.
'인쇄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사유를 퇴화시킨다'는 500년 전의 경고는 완전히 틀렸다.
책은 인간의 뇌를 퇴화시킨 것이 아니라, 뇌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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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요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읽을거리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저 훑어볼 뿐, 무언가를 진지하게 머릿속에 담아두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성의 종말이다.'
숏폼과 유튜브에 빠진 현대인을 향한 비판처럼 들리는가. 놀랍게도 이 탄식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유럽의 한 지식인이 남긴 경고다. 그리고 그가 지목한 '인류의 지성을 망가뜨리는 주범'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세상을 뒤흔들던 16~17세기, 책은 지금의 유튜브나 틱톡처럼 '경계해야 할 유해 매체' 취급을 받았다. 1450년 인쇄 혁명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유럽 전역에는 수천만 권의 책이 쏟아졌다. 지식의 대폭발이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환호 대신 깊은 우려를 표했다. 17세기 프랑스 학자 아드리앙 바이에는 "책이 이토록 무시무시하게 늘어난다면 결국 우리는 야만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철학자 라이프니츠조차 "책이라는 끔찍한 덩어리 때문에 지식의 세계가 붕괴할 것"이라며 혀를 찼다.
그들의 논리는 나름 정교했다. 첫째, 책에 다 적혀 있으니 굳이 외울 필요가 없어진다는 '기억력 감퇴' 우려. 둘째, 쏟아지는 신간들을 얕게 훑다 보면 한 가지를 깊이 사유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는 '사고력 저하' 비판. 오늘날 우리가 걱정하는 '디지털 치매'나 '팝콘 브레인'과 판박이다. '검색만 하면 다 나오니 외우려 하지 않는다', '1분짜리 영상만 보느라 긴 글을 읽지 못한다'는 오늘의 탄식과 500년 전의 탄식은 사실상 같은 문장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은 책 때문에 머리가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류는 쏟아지는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목차', '색인', '참고문헌'을 발명했고, 방대한 지식을 요약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통째로 암기하는 저장소에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연결하는 프로세서로 진화했다.

오늘의 데이터 홍수도 마찬가지다. 책의 홍수가 색인과 백과사전을 낳았듯, 데이터의 홍수는 검색 엔진과 인공지능(AI)을 낳았다. AI는 21세기의 색인이자 사서다. 우리가 정보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도록, 필요한 지식을 건져 올려 요약하고 정리해 준다.
'인쇄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사유를 퇴화시킨다'는 500년 전의 경고는 완전히 틀렸다. 책은 인간의 뇌를 퇴화시킨 것이 아니라, 뇌를 사용하는 방식을 바꿨을 뿐이다. AI와 디지털 문명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 암기와 정보 습득의 시대를 지나, 정보의 맥락을 읽고 질문을 던지는 '통찰의 시대'로 인류를 이동시키고 있다. 우리는 절대 퇴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더 똑똑한 도구를 쥔 인류로 진화해갈 것이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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