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경쟁에서 ‘담론’ 경쟁으로…빅테크가 ‘미디어’ 사들이는 까닭[산업이지]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빅테크들은 언제나 바삐 쇼핑을 합니다. 인공지능(AI) 개발·운영을 위한 컴퓨팅 인프라부터 뛰어난 인재까지 쇼핑하듯 영입합니다. 그런 빅테크들의 쇼핑 리스트에 최근 하나가 더 추가됐습니다. 바로 ‘미디어’인데요. AI와 기술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가운데 빅테크의 경쟁이 기술을 넘어 ‘담론’으로 확장하는 모양새입니다.
팟캐스트 인수, 직접 잡지 발행도
최근 화제는 단연 챗GPT 개발사 오픈AI입니다. 오픈AI는 지난 2일(현지시간) 테크 전문 팟캐스트 ‘TBPN’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TBPN은 2024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인기 팟캐스트로, 실리콘밸리 투자자·창업자인 존 쿠건과 조디 헤이스가 진행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기술이나 인수·합병(M&A) 소식을 전하고 논평하는 게 주요 콘텐츠고요.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자주 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 등이 게스트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TBPN 인수가 눈길을 끄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오픈AI는 최근 영상 AI ‘소라’, AI 쇼핑 기능 ‘인스턴트 체크아웃’ 같이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비주력 사업을 줄줄이 접으며 수익성을 개선 중이거든요. 그런 와중에 거액을 들여 팟캐스트를 산 거죠.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1억~3억달러 초반대(약 1500억~4000억원)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오픈AI 외에도 미디어를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서학 개미’가 사랑하는 AI 기업 팔란티어는 지난해 ‘더 리퍼블릭’이라는 잡지 발행을 시작했습니다. 실리콘밸리 기반 유명 벤처캐피털(VC)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는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 투자, 메시지를 발신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빅테크가 설파하는 ‘장밋빛 미래’
빅테크들이 자체 미디어 생태계 구축에 나선 배경에는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업계의 반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오랜 전통의 IT 전문 매체가 여럿 있는데, ‘테크 크런치’나 ‘와이어드’ 같은 곳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매체가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는 게 테크 업계가 공유하는 정서고요.
결국 AI와 같이 자신들이 만들어나가는 신기술에 대한 담론을 유리하게 형성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TBPN, 더 리퍼블릭을 보면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미래는 장밋빛으로 그려집니다. AI로 인한 일자리 타격부터 저작권 문제, 정신 건강, 데이터센터로 인한 환경 파괴 등 부정적 측면은 다뤄지지 않습니다. 오직 혁신성만 부각할 뿐이죠. 오픈AI의 TBPN 인수를 두고 “오픈AI는 단순히 팟캐스트 하나를 사는 게 아니라 ‘영향력’을 사는 것”(CNN 방송)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오픈AI의 요즘 상황을 보면 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오픈AI는 챗GPT로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지만, 클로드(앤트로픽), 제미나이(구글) 등 경쟁 모델에 파이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와 군사적 AI 활용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독 취소 운동인 ‘큇GPT’에 직면해 있고요. 여론을 반전시킬 비장의 무기로 TBPN이 필요했을 겁니다.
AI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담론을 주도하려는 빅테크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AI를 향한 적개심이 실제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일 20대 남성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올트먼의 자택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국은 이 남성이 작성한 문서에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주요 AI 기업 CEO와 투자자 명단, 주소 등이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4160600031
비판할 자유, 보장될까

오픈AI는 TBPN 인수 계약에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TBPN도 SNS를 통해 비슷한 취지의 입장을 밝혔고요.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게 인수된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초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했습니다. 수익성 악화가 표면적 이유지만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의 언론 상황만 봐도 답은 나옵니다. 모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매체는 없습니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존재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고요.
실리콘밸리의 유력 IT 전문 매체 ‘더 인포메이션’의 편집국장 마틴 피어스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지난 2일 TBPN 인수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가 쓴 칼럼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TBPN에 대한 오픈AI의 편집권 독립 약속은 무의미하다. 무엇을 위한 독립인가? TBPN이 오픈AI를 강하게 비판하는 콘텐츠를 만든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 프로그램의 DNA가 아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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