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철의 문향 오디세이] ‘아리랑 전도사’ 호머 헐버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방탄소년단(BTS)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가 지구촌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다.
벚꽃이 휘날리는 어느 날 이곳을 찾았더니 아리랑 악보, 헐버트의 저서, 훈장 등이 전시돼 있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최근 K-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헐버트의 아리랑 악보가 씨앗 역할을 했다"면서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와 헐버트의 공헌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가 지구촌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130년 전에 예견한 선각자가 있었다. 그는 격동기인 1886년 한국에 와 계몽 활동에 헌신한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다. 헐버트는 1896년 아리랑의 멜로디를 최초로 서양 음계로 채보해 국제 사회에 알리면서 "아리랑을 노래하는 조선인들은 워즈워스 같은 시인이며 즉흥곡의 명수"라고 강조했다.
헐버트의 입국 140주년을 맞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10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행사로 3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 서촌의 '함께봄' 공간에서 아리랑 관련 전시회를 열고 있다. 벚꽃이 휘날리는 어느 날 이곳을 찾았더니 아리랑 악보, 헐버트의 저서, 훈장 등이 전시돼 있었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은 "최근 K-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헐버트의 아리랑 악보가 씨앗 역할을 했다"면서 "이번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와 헐버트의 공헌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헐버트는 이렇게 말하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다 한강변 마포나루 양화진 묘지에 묻혔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했다.

청년 시절에 그는 헐버트의 저서 '대한제국멸망사'를 읽고 벽안(碧眼)의 서양인이 방대하고 치밀한 한국 역사를 기술했다는 점에서 경탄했다. 그는 헐버트의 업적을 정리하는 일이 운명적인 사명임을 직감했다. 금융인으로 일하면서 주경야독으로 헐버트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읽고, 정리했다. 미국에 체류하며 도서관을 찾았고 유족들을 만났다. 모든 활동 경비는 사재로 감당했다.
2010년에 그는 오랜 집념의 산물인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를 출간했다. 2016년엔 헐버트의 논문 57편을 번역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를, 2019년엔 '헐버트의 꿈 조선은 피어나리!'를 펴냈다. 2021년엔 헐버트의 평양 여행기 '말 위에서 본 조선'을 번역 출판했다. 2025년엔 헐버트의 영문판 일대기 'What About KOREA'를 펴내기도 했다.
헐버트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부임했다. 나흘 만에 한글의 원리를 깨우치고 음성기관을 본떠 만든 한글의 과학성에 감탄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의 역사, 지리를 공부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과서를 한글로 집필했다. 1889년에 탄생한 '사민필지(士民必知)'가 그것이다. 170쪽의 이 책에서 그는 한글 전용을 주장했다.
헐버트는 1892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The Korean Repository)'을 창간하면서 '한글(The Korean Alphabet)'이란 9쪽짜리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세종대왕의 창의성, 애민정신을 소개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했다.
1899년 미국의 '하퍼스(Harper's)'라는 학술지에 한국의 금속활자, 거북선, 폭발탄, 현수교, 한글이 세계적인 발명품이라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 단행본 20권, 논문 및 기고문 304편을 발표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에도 일조했다. 창간자 서재필에게 인쇄 시설을 제공하고 영문판 편집을 맡았다.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특사로 갔다. 헤이그 특사 건은 실패로 끝나고 이준 열사는 분사(憤死)했지만 헐버트는 나름대로 국제사회에 일본의 횡포를 알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힘없는 한민족을 위해 불꽃같은 일생을 보낸 헐버트 박사, 각박한 염량세태(炎凉世態)에 개인적인 영달과 무관한 일에 매달린 김동진. 이 두 의인에게 경의(敬意)를 품고 전시회를 관람했다.
고승철(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