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신문 사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를 양성하자”
1955년 4월 18일 76세

식민지 시기인 1928년 10월 3일자 조선일보는 1면 사설에서 “조선인 과학자 양성의 필요”를 주장했다.
“모든 것이 결핍한 조선에 잇서 과학자의 결핍도 그의 하나이 될 것이다. (…) 우리네가 신문명을 수입한지 반세기에 이르도록 세계에 향하야 내여 노을 만한 과학자 일인이 업다 하여서야 우리네 민족적 수치가 되지 아니할가.”(1928년 10월 3일 자 1면)
사설은 “공허한 대언장담보다 오즉 이 과학적 실증은 우리 민족과 우리 사회에 대하야 희망과 광명을 보이여 주는 것인 즉 우리가 민족적 전도의 운명을 개척함에 잇서서도 과학자의 양성이 가장 중요한 조목의 하나이 되는 것”이라며 “상대성 원리의 아인슈타인을 말할 때에는 반듯이 유태족을 연상하게 되고 라지옴의 큐리를 말할 때에는 반듯이 파란족(波蘭族·폴란드)을 연상하게 됨과 가티 세계 사람으로 하야금 어떤 과학상 발견자를 말할 때에는 반듯이 우리 조선인을 연상케 함을 요(要)한다”고 했다.

조선이 비록 식민지 처지에 있지만 조선인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적 과학자를 양성한다면 우리 민족에도 희망이 있다는 열망이 담겨 있다.
당대 과학자의 대표적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었다. 사설에서 예시한 것처럼 식민지 조선에서도 그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었다.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1929년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의 초기 결과물인 ‘원격 평행선’ 개념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 세계 과학계와 대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 사실도 식민지 조선에 즉시 알려졌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최근 신학설을 발표한 이래 박사는 귀치안흔 신문기자의 포위를 피하야 백림(베를린) 교외 완제 호반에서 호을로 연구를 계속하든 중 또 ‘유니퐈이드 필드’의 원칙에 관한 신실증법을 발견하고 사일 푸로시아 학사원(學士院)에 발표하엿다.”(1929년 4월 10일 자 3면)
앞서 1월에도 아인슈타인이 새 학설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보로서(普魯西·프로이센) 과학원에 “전자기(電磁氣)는 결국 전력(電力)과 가튼 힘”이라는 학설 논문을 제출코자 최근 그 논문을 탈고식혓는데 그것은 밧구어 말하면 바늘을 자석이 끄으는 힘은 자석을 지상에 떨어트리는 힘과 가튼 것이라는 오랫동안 학계의 의문이면서 이때것 아모도 풀지 못하얏든 것을 수자적으로 정확히 입증식힌 것으로 학계의 일대경이(驚異)이더라.”(1929년 1월 27일 자 3면)
이어 아인슈타인의 새 학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인슈타인의 신학설의 가치’ 제목으로 베를린대학 한스 라이헨바흐 교수를 인용해 1929년 2월 2일과 3일 2회에 걸쳐 연재 기사로 소개했다.

아인슈타인 관련 기사는 자주 등장했다. ‘아인슈타인 학설에 의한 제4차원의 세계’(1929년 3월 23일), ‘‘아’ 박사의 신설(新說), 태양은 양극이 고열(高熱)하다’(1931년 4월 14일), ‘바이올린이스트로서의 아인슈타인과 뭇솔리니’(1931년 8월 7일), ‘아인슈타인의 미국인관(觀)’(1932년 5월 4일), ‘아인슈타인 박사 ‘시온’ 부흥을 운동’(1933년 9월 2일) 등으로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치는 아인슈타인의 재산을 몰수했다.
“물리학계의 거벽 아인슈타인 박사는 나치스 정권하에서 재(在)한 유태인 압박에 견듸지 못하야 자유의 나라 미국에 망명하야 부리스톤(프린스턴) 대학에 수학의 강좌를 담당케 되엇는데 보로서 주정부는 동씨(同氏) 급 부인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폭거에 출(出)하얏다. (…) 아인슈타인 박사가 유태인이기 때문에 힛틀러 정부에 의하야 여러 가지 압박을 바든 과거의 사실은 본지에서 과거 상보한 바 잇섯거니와 아씨(氏)는 그간 백이의(白耳義·벨기에)와 영경(英京·영국 수도) 륜돈(倫敦·런던) 등지에 전전하면서 국제 유태인 구호 반(反)힛틀러 동맹(同盟)의 명예회장으로써 각국 지식 계급의 원조(援助)를 구하고(…)”(1933년 11월 23일 자 1면)

이후 아인슈타인 관련 기사는 그의 정치적 활동에 더 주목했다. ‘석학 아인슈타인 박사, 미국의 국제연맹 가입 강조/일본과 독일은 침략국이라고’(1934년 4월 25일), ‘아인슈타인 박사 유태국가를 제창’(1935년 6월 20일), ‘세계 정부 창설하라, ‘아’ 박사 UN에 재 서한’(1947년 9월 24일) 등이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18일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부음 기사는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 겸손한 인격, 인도주의를 고창(高唱)’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원자력 발견에 있어서 자신의 과학적 공식에 의하여 많은 기여를 한 아인슈타인 박사는 지난 십칠일 당지(當地·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병원 발표에 의하면 사인(死因)은 방광염이라고 한다. 최근에 이르러 공개 접촉을 피하여 온 아인슈타인 박사는 프린스톤 대학에서 연구 생활을 계속하여 왔다. 얌전하고도 겸손한 수학과 물리학의 위대한 천재인 아인슈타인 박사는 그의 일생을 전 우주를 지배하는 통일된 수학법칙의 개념을 연구하는데 보냈던 것이다. 상대성 원리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알버르트 아인슈타인 교수는 현대 과학자 중의 가장 위대한 한 사람이며 또한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대천재로서 세계적으로 숭앙받는 한 사람인 것이다.(…)”(1955년 4월 20일 자 2면)

애도가 이어졌다.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전 세대를 통하여 위대한 존재”라고 했다.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원자시대에 삶을 향유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아인슈타인 박사는 자유사회에 있어서 개인의 위대한 창의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1955년 4월 20일 자 4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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