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문장 제련소 / 김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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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제련소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얼마나 글쓰기에 노심초사했으면 제련을 떠올렸을까? 제련은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함유한 금속을 뽑아내어 정제하는 작업이다.
제련과정이 어렵듯 글쓰기도 난경이다.
문장 제련소에 나타난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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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과 날줄로 직조한 빛나는 착각일까/ 쇠비린내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지독한 안개의 쇠사슬에 결박당한 언어들// 라르고로 쌓여가는 버려진 파지의 시간/ 분홍빛 잇몸에 돋는 새싹 같은 울림에/ 슬픔이 겨울강을 지나 비상 착륙한다// 폐허와 신생을 동시에 사는 나무처럼/ 인간의 규정 속에 생멸하는 어휘들/ 붙잡혀 매운 향기로 단단해진 문장들
『오늘의 시조』(2025, 하반기호)
「문장 제련소」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얼마나 글쓰기에 노심초사했으면 제련을 떠올렸을까? 제련은 광석을 용광로에 녹여 함유한 금속을 뽑아내어 정제하는 작업이다. 화자는 글쓰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련과정이 어렵듯 글쓰기도 난경이다. 특히 자신이 쓴 글이 어떠한 수준인지는 스스로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에게 냉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늘 궁구하고, 생각을 글로 적기 위해 고뇌를 거듭한다. 이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때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줄 때도 있다. 「문장 제련소」에 나타난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여러 가지 사실을 엿보게 된다.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 빛나는 착각일까, 라고 먼저 말문을 뗀다. 시인은 이따금 빛나는 착각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쇠비린내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지독한 안개의 쇠사슬에 결박당한 언어들, 이라는 대목을 통해 보듯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고심한다. 레일에서 쇠비린내를 느낄 만큼이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는 언어들이 지독한 안개의 쇠사슬에 결박당했다고 표현할 정도라면 얼마나 치열하게 창작에 임하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을 터다.
둘째 수도 썩 인상적이다. 라르고로 쌓여가는 버려진 파지의 시간, 이라면서 글쓰기가 느리고 폭이 넓게 이루어지는, 인내를 요구하는 일임을 환기한다. 파지가 계속 쌓이면서 글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분홍빛 잇몸에 돋는 새싹 같은 울림에 슬픔이 겨울강을 지나 비상 착륙한다, 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분홍빛 잇몸에 돋는 새싹 같은 울림, 이라는 구절은 생명의 환희를 생생하게 직조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자는 폐허와 신생을 동시에 사는 나무처럼 인간의 규정 속에 생멸하는 어휘들, 이라는 이채로운 비유로 글쓰기의 진면목을 독자의 뇌리에 아로새겨준다. 그것은 붙잡혀 매운 향기로 단단해진 문장들이다. 어쩌면 불멸의 경지 가까이 다다른 세계일지도 모를 일이다.
모처럼 참신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조 「문장 제련소」를 읽는 기쁨이 컸다. 이렇게 시조는 새로워지면서 음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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