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현의 세금과 상식] 운용의 묘가 필요한 과세전 적부심 제도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지나간 해의 판례 동향을 되돌아보는 기획을 많이들 합니다. 저도 겸사겸사 2025년 판례공보에 수록된 '조세' 편의 판결들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다양한 논점을 다룬 다수의 판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만, 특히 이른바 '과세예고통지'와 '과세전 적부심사'에 관한 서너 건은 분명 눈에 띄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달에는 이 판결들을 소재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2. '총론'과 '각론'이라는 논의 체계는 우리한테 익숙한데, 세법에서 '총론'에 해당하는 단행법으로 국세기본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주로 세법의 해석, 세금의 부과나 이에 대한 불복의 절차 등을 규율하지만, 그 밖에 관심을 끄는 것으로 제7장의2가 있습니다. 번호에서 드러나듯이 다른 조항보다 늦게, 1996년 말에 들어온 이 장의 제목은 '납세자의 권리'입니다. 납세자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세금을 부과·징수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특히 이러한 보호의 필요가 높은 것이 세무조사 단계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이 장에 들어 있는 조항의 대부분은 국가의 세무조사 권한에 대한 제약을 다룹니다.
그중 제81조의4 제2항은 '중복' 세무조사를 금지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무조사 권한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는 당연하면서 또 절실한데, 그 한 내용이 같은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중복해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되도록 한 번에 끝내라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과거의 국세청은 사실 제7장의2 전체를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고, 그래서 중복 조사 관련 규정 역시 이를테면 선언적인 의미를 가지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2006년에 와서 과세처분을, 그 실체적 당부에 관계없이 중복 조사의 결과라는 절차적 이유만으로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됩니다(2004두12070). 납세자는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되는 셈이지만, 그런 결과를 감수할 정도로 이 규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새로운 판례가 나온 이후로 조세소송에서 납세자를 대리하는 실무가들은 제7장의2의 규정들을 즐겨 활용하게 되었고, 중복 세무조사 외에도 세무조사 대상 선정 관련 규정에 위반하여 이루어진 세무조사의 결과인 과세처분을 취소하는 판결도 선고되는 등(2012두911) 이 영역이 전에 없이 큰 실무적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3. 여기에는 제81조의15라는 번호를 단 조문도 있는데, '과세전 적부심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 작명은 구속 적부심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데, 핵심은 취소소송의 대상이 될 과세 '처분'을 받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다투어 볼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과세처분'이란 과세관청이 납세의무의 액수를 정해서 납부를 고지하는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데, 흔히 납부고지서의 송달로 그 존재가 드러납니다. 결국 납세자가 고지를 받기도 전에, 고지서에 앞으로 적힐 내용을 놓고 과세관청과 미리 일합을 겨룰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납세자로서는 애초에 과세처분의 가능성 자체를 아예 차단할 수 있으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테니, 이 제도를 새로 만든 것은 조세행정 영역에서 납세자의 입장을 상당히 배려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이 적부심사의 청구는, 과세관청이 장래 행할 과세처분의 내용을 담은 일정한 '통지'(납부고지와 다릅니다)를 납세자에게 함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이때 세무조사가 선행하면 세무조사결과통지라는 것을 하고, 세무조사 없이 과세할 때에는 '과세예고통지'를 합니다.
2016년에는 이러한 과세예고통지 없이 과세처분을 하거나, 통지는 하였더라도 과세전 적부심 절차를 온전히 거치지 않은 채 과세처분을 하였다면 그러한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들이 나왔습니다(2015두52326, 2016두49228). 방금 말한 대로 과세전 적부심 제도가 납세자에게 부여하는 일정한 절차법적 이익이 있고, 과세예고통지는 그 절차의 전제가 되므로 어느 경우에나 과세처분이 위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서, 헌법의 적법절차 원칙을 언급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과세전 적부심에 그 정도로 강한 의미가 있다고 이해한 셈입니다.
4. 이야기는 이제 2025년으로 넘어옵니다. 과세처분을 할 때 과세관청이 '부과제척기간'이라 흔히 불리는 시간적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통지'나 적부심을 거칠 여유가 없는 경우가 있고 이때 적부심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과세처분을 할 수 있는 예외가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척기간이 보통 5년이라 의외로 이런 경우가 왕왕 생기고 실제로 과세관청이 예외 적용을 주장하면서 과세예고통지나 적부심 절차를 생략하고 과세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2025년의 판결들은 그 적법 여부를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판결들에서도 납세자 쪽의 이익을 강하게 보호하는 입장입니다(2023두41659, 2025두31960). 요약하자면, 제척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늘 예외를 적용할 수는 없고, 그 시점까지 이르게 된 데에 과세관청의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그 증명책임은 과세관청에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과세관청이 의도적으로 과세를 지연한 경우는 물론, 업무 태만으로 과세가 늦어져 과세전 적부심을 거칠 수 없을 지경이 되었어도 과세처분을 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보아야 하는 이유로는 역시 과세전 적부심의 절차법적 의미와,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적법절차 원칙을 듭니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과제척기간이 한 달 남았다고 해 봅시다. 과세예고통지를 하고 과세전 적부심까지 거쳐야 과세처분을 할 수 있는데, 통지야 할 수 있겠지만 적부심 청구를 받아 결정까지 나오게 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법이 정하는 예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번 판결들은 그 적용요건을 퍽 까다롭게 해 놓았습니다. 과세관청으로서는 당장 차질 없이 과세처분을 마치는 것 못지않게, 왜 지금에야 과세처분을 하게 되었는지, '귀책사유'가 없다고 볼 사정을 들어 법원을 설득할 준비를 미리 해 두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됩니다.
또 다른 판결(2025두34254)의 사안에서는 부과제척기간의 기산점이 분명하지 않고 몇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있었던 듯합니다. 대법원의 해석으로는 과세처분을 한 때에 아직 제척기간 만료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었고 따라서 예외 적용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과세처분이 위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사실관계가 불분명하지만) 과세관청 입장에서는 제척기간 기산점 관련하여 더 '안전한' 해석을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을 수 있고, 만약 그러한 입장에 따라 우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예외를 적용, 과세처분을 한 것이라면, 여기서 과세관청에 결정적 불이익을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에나, 물론 납세자로서는 적부심의 절차법적 이익을 일부 상실하는 결과이지만, 그래도 과세처분의 실체적 당부를 행정심판·소송 같은 일반적 불복 절차에서 다투어 볼 기회를 여전히 누린다는 점입니다. 반면 과세관청으로서는 다양한 이유에서 부과제척기간 만료가 임박해서야 납세의무의 존재를 발견하거나 인식하게 될 현실적 개연성이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부랴부랴 과세처분을 하는 한편, 왜 그제서야 과세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일일이 법원을 설득할 준비를 아울러 해야 한다는 해석론은 아무래도 조금 현실감각을 잃은 결과인 듯 여겨집니다.
그래서 적법절차라는 헌법 원칙을 근거로 내세웠겠지만, 과세전 적부심이 주는 절차법적 이익이라는 것이 정말로 그런 차원에 속하는지도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처분 전 불복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지, 지금처럼 행정심판 전치주의를 그대로 유지할지 말지 등 불복 절차의 전체 체계를 짜는 일은 입법 재량에 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의욕을 가지고 새로 세운 판례이기는 한데, 운용의 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현장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우려도 있는 듯합니다.
윤지현 교수(서울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