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한국은 호르무즈 핵심 당사국… 자유 항행 위해 실질 기여할 것”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4. 1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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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국 화상 정상회의서 밝혀
17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호르무즈 해협 항행 안전 확보와 연합 군사 작전 논의를 위한 다자 정상회의가 열렸다. 키어 스타머(왼쪽에서 다섯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왼쪽에서 여섯째)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49국과 국제기구가 참석했으며, 우리 정부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을 제외한 세계 49국 정상·대표와 2개 국제기구가 17일 프랑스·영국이 주도한 ‘호르무즈 해협 해상 항행의 자유 이니셔티브’ 화상 회의에서 해협의 정상화를 촉구하며 향후 기뢰 제거, 선박 호위 등 ‘평화적 다국적 활동’에 협조하기로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공동 주관했다. 화상회의이지만 주요 7국(G7)의 유럽 정상은 모두 파리에 모여 새로운 세계 질서 구상에 대한 의지와 연대를 과시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 정상 다음으로 발언했다. 이 대통령은 “공공의 자산이자 글로벌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축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전세계 에너지, 금융, 산업, 식량안보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을 우려한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안에 발이 묶인 선원들의 안전과 건강이 충분히 보장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 이 대통령은 “교착 상태를 조속히 해소하고 해협의 안정을 위한 관리 메커니즘을 국제 사회가 함께 모색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약 70%를 수입하는 핵심 이해 당사국”이라며 “한국도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한 ‘실질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향후 한국이 해군 함정 파견 등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날 회의엔 캐나다·호주·네덜란드·스웨덴·뉴질랜드·이라크·싱가포르 정상도 화상으로 참석했고, 국제해사기구(IMO)를 비롯한 국제기구도 참여했다. 주요 외신들은 “전쟁 당사국이자 그동안 국제 질서의 설계자 및 수호자 역할을 해온 미국의 부재(不在)가 두드러지는 회의였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스타머 총리는 “우리는 글로벌 안정과 안보로 복귀를 위해 해운 업계를 안심시키고 기뢰 제거를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건 없는 즉각적인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은 글로벌 책무로, 우리는 세계 에너지와 교역이 다시 자유롭게 흐르도록 행동해야 한다”며 “마크롱 대통령과 나는 항행의 자유 보호를 위한 다국적 이니셔티브 수립에 대한 명확한 의지가 있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이 계획은 순전히 방어적 성격으로 중동 지역에서 진행 중인 적대 행위와는 별개”라며 “충돌에 관여하지 않고 해상 교통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세계 정상들이 이날 머리를 맞댄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요구해온 호르무즈 파병에는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도 해협 봉쇄가 초래한 세계 경제 타격을 복구하는 활동에 나섬으로써 각국의 우려를 가라앉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미국·이스라엘은 물론 이란과도 동맹을 맺고 싶어 하지 않는 제3국들의 연합”이라며 “유엔 해양법에 따라 자유 항행이 유지돼야 한다는 ‘공통의 이익’을 가진 국가들”이라고 했다.

국제 해양법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더라도 미군 함정이 상선 호위·감시에 나서는 것은 잠재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쟁 당사국인 미국은 이미 ‘중립성’을 상실했기에 이란이나 예멘의 후티 반군 등과의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던 국가들이 나서 ‘항행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갈라서고 있는 프랑스·영국 등이 ‘미국 패권 이후’ 세계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는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각국이 기뢰 제거나 해상 호위 작전을 어떻게 분담해서 실행할지,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이 어느 정도 병력을 내보낼 수 있는지 세부 사항 등은 향후 논의로 남겼다. 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선 ‘미국 없이 호르무즈 해역에서 작전을 할 역량이 되긴 하느냐’는 내부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 해군의 기뢰 탐지함 7척 중 4척은 현재 작전에 투입할 수 없는 상태고, 유럽연합(EU)이 2024년 홍해 교통 안전을 위해 시작한 ‘아스피데스 작전’에 상시 투입된 해군 함정도 2척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날 세계 정상 회의는 상징적 차원의 신호를 발신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를 명시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미국 없는 군사 행동’에 나설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과도한 보험료를 부과하려는 보험사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 르몽드는 “이번에 처음 출범한 정상회의체는 우크라이나 평화유지와 전후 재건을 위해 서방국 중심으로 결성된 ‘의지의 연합’의 중동 버전”이라며 “다만 유럽 등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이란의 ‘영구적 통행료 부과’ 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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