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연주에 눈물 뚝뚝 흘리면서 독가스 밸브 연 나치

김성현 기자 2026. 4. 1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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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네 줄 위의 희망

네 줄 위의 희망

제임스 그라임스 지음|이민철 옮김|코뮤니옹|356쪽|2만3000원

‘죽음의 수용소’로 불렸던 나치의 아우슈비츠에 오케스트라가 있었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1933년부터 독일 강제 수용소에는 공식 악단이 활동했고 아우슈비츠에도 여러 악단이 존재했다. 단원은 수감자 중에서 선발된 연주자들로 구성됐다.

이 악단들은 나치 친위대 최고 지휘관이었던 하인리히 힘러나 적십자 대표 등이 방문했을 때, 또 매일 두 차례씩 작업반이 수용소를 나가고 들어올 때에도 연주를 맡았다. 군가와 행진곡이 많았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나치 경비대와 동료 수감자들을 위해 클래식 명곡과 오페라, 춤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대외 행사를 위한 홍보 역할인 동시에 일종의 사기 진작용이었던 셈이다.

미국 음악학자인 제임스 그라임스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의 ‘네 줄 위의 희망(원제: Violins of Hope)’은 2차 대전의 격랑 속에서 소용돌이쳤던 음악인과 현악기들의 운명을 살핀다. 원제는 대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연주하거나 소유했던 악기들을 정성껏 수리하고 보존했던 이스라엘 현악기 장인의 프로젝트에서 가져왔다. 흔히 이런 사연을 접하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 같은 인간미 넘치는 장면들을 떠올릴 것이다.

1941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오케스트라의 실제 연주 모습. /아우슈비츠 박물관

하지만 이 책이 독특한 점은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비정한 현실 속에서도 위안과 희망을 전했던 음악이라는 복합성과 양면성을 모두 살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수용소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말끔한 옷과 음식을 추가로 배급받았고, 악기 수리와 주방처럼 부담이 적은 업무를 배정받는 ‘특혜’를 누렸다. 나치와의 공생이나 공존이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단원들도 수용소 이감이나 처형 같은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의 편곡자이자 악장이었던 폴란드계 유대인 음악가 시몬 라크스(1901~1983)는 자신의 연주에 감동하는 나치 친위대원들을 보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인류에게 이토록 잔혹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쉰들러 리스트’보다는 차라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나 ‘사울의 아들’에 가깝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었던 나치 친위대 장교 루돌프 회스(1901~1947)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사울의 아들’은 수용소에서 시신을 옮기는 작업을 맡았던 수감자들인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를 극화했다. 두 영화 모두 칸 영화제 그랑프리와 미 아카데미 국제 장편 영화상 수상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등장인물이나 모델이 모두 이 책에 나온다는 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일상을 다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회스는 수용소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틈틈이 공연을 열기도 했다. /A24

실제로 루돌프 회스에 대한 이 책의 묘사를 읽다 보면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틈틈이 공연을 열어 자신이 교양이 풍부하며 예술을 아끼는 사람임을 수용소를 방문한 손님과 가족에게 과시했다(126쪽).” 하지만 그런 수용소장 곁에서는 어김없이 시신 처리를 하는 존더코만도가 일하고 있었다. “존더코만도 부대는 부패한 시신을 화장터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은 부대로,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고약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136쪽).” 심지어 수용소의 오케스트라 단원은 죽음을 앞둔 존더코만도 부대원들 앞에서 2시간 동안 연주하기도 했다. 요컨대 이 책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사울의 아들’을 다시 읽는 것과도 같다.

수용소 바깥의 삶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영국 정부가 1917년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던 ‘밸푸어 선언’ 이후 나치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은 급격하게 늘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갈등이 고조됐고, 결국 아랍인의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골머리를 앓던 영국은 1945년 종전 때까지 유대인 난민들을 인도양의 모리셔스섬 수용소에 보내기도 했다. 한 수용소를 벗어나니 또 다른 수용소가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요즘 같은 이분법적 사고의 시대에 이 책은 분명 ‘친(親)이스라엘’로 보일 법하다. 실제로 저자는 이 책으로 2014년 홀로코스트 부문 ‘전미(全美) 유대인 도서상’을 받기도 했다. 나치 수용소와 음악이라는 비극적 주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책들은 국내에도 적지 않다. 음악학자 이경분씨의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이나 ‘수용소와 음악’ 같은 노작(勞作)이 대표적이다. 2차 대전이 음악사 전반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면 지휘자 존 마우체리의 ‘전쟁과 음악’을 읽어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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