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택 “홍명보 감독에 대한 불안감? 뒷말·불신·분열을 버리자”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아시아의 표범’ 이회택에게
북중미 월드컵 전망을 물었다

소년 시절 흑백TV 속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빨랐고 거칠었고 남자다웠다. 차범근⸱박지성⸱손흥민 이전에 그가 있었다. 별명은 ‘아시아의 표범‘. 그가 서울운동장 론그라운드를 질주하면 전율이 흘렀다. 이회택은 승리의 다른 이름이었다. 북중미 월드컵을 50여 일 앞두고 그를 만났다. 80 나이에도 다부진 몸매에 눈빛이 형형했다.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기억력까지.
실망스러운 평가전에 홍명보 감독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데 어떤 입장일까 궁금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홍 감독에 대한 불만은 약속을 깨고 욕심을 부려 대표팀을 맡았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아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는 원한 게 아니라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떠맡은 겁니다. 내가 잘 압니다. 후배나 유튜버들이 ‘절차와 과정을 어겼다’ ‘시스템이 붕괴됐다’ ‘사퇴했어야 한다’고 함부로 비판하고, 심지어 운동장에서 감독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기억나나요? 우리 축구 역사에서 올림픽에서 최초로 일본을 물리치고 동메달을 따낸 건 엄청난 업적이에요. 홍 감독은 내가 아는 한 국내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이젠 분열 말고 단합해야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 늙은이가 호소합니다.”
최근 기세 좋은 일본 축구 얘기를 하려던 참이라 질문을 이어갔다. 한⸱일을 비교한다면 어떤지. “우리는 승부를 앞세우고 무조건 이기자는 축구고, 일본은 기술⸱자세⸱기본기를 중시해요. 대학입시와 관련 있어요. 전국 대회 4강에 들어야 대학에 갔던 시스템에서 선수들은 단기전에서 승리하는 데 익숙합니다. 지도자는 진득하게 기술을 전수할 시간과 여유가 없어요. 1960~1980년대는 우리가 조금 앞섰죠. 선수들끼리 ‘쟤들은 교과서처럼 답답하게 축구를 하네’라고 비웃었어요. 그런데 꾸준한 연습⸱훈련⸱기술 연마, 그게 일본의 저력이 됐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마치자마자 월드컵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냉정하게 주요 선수의 장단점 평가를 요청했다. “나보다 잘하는 선수들을 평가하기 곤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계속 조르자 마지못해 입을 연다. “손흥민. 100년에 하나 나올 법한 선수죠. 그런데 34살의 나이. 축구선수는 서른 넘으면 순발력이 떨어지게 돼 있어요. 대신 시야는 넓어집니다. 어시스트 쪽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해요. 다행히 그리로 가고 있어요. 이강인은 ‘슛돌이’부터 눈여겨봐 왔습니다. 타고났어요. 부탁할 건, 중원에서 부릴 기술과 체력을 아껴 최전방에서 써주길. 오현규⸱양현준, 둘의 성장도 눈부셔요. 슛이 빠르고 강하고 타이밍도 감각적이에요. 기대가 큽니다.”
축구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은 언제일까. “오래됐지만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교 시절, 고향 김포를 떠나 서울의 몇몇 축구 명문 학교를 무작정 찾아갔어요. 우여곡절 끝에 동북고로 전학해 박병석 감독님(1924~2015)을 만났습니다. 기술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웠고, 나는 피나는 연습으로 보답했어요. 각종 대회 득점왕을 차지하고 국가대표가 됐죠. 축구 황제 펠레와의 만남도 잊을 수 없어요. 1972년 브라질 산투스 축구단과의 친선 경기. 슈팅⸱드리블⸱헤딩 모두 마술 같았습니다. 최고참인 나와 당시 신예 차범근이 한 골씩 넣었지만 3대2. 역부족이었죠.”
“슬픈 기억이라면 감독으로 출전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우루과이⸱벨기에가 같은 조로 강팀 일색. 경기 일주일 전에 간신히 도착해 시차 적응에 실패했어요. 세 번째 경기 때에서야 평소 실력이 나왔죠. 결과는 3패. 선수들이 미리 현지 도착했다고 노는 게 아니거든요. 축구 선진국은 거의 2주 전에 도착해 컨디션을 끌어올려요. 무엇보다 한(恨)으로 남는 건, ‘아시아 올스타’에 한국 선수 최초로 뽑히고 국가대표를 그렇게 오래 했건만 선수로서 월드컵과 올림픽에 못 나간 거죠. 국력이 약했던 이유가 커요.”
축구협회 부회장과 기술위원장도 역임한 그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는 뭐라고 볼까. “여러 외국 지도자와 대화를 많이 했어요. 공통 지적 사항이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볼이 왔을 때는 잘하는데, 볼을 안 가졌을 때 움직임이 문제라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것. 뼈아픈 지적이에요.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요.” 스리백 수비 문제는? “스리백·포백, 둘 다 장단점이 있어요. 전술보다 중요한 건 단합이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월드컵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기술로 세계 4강을 이뤘나요? 히딩크라는 걸출한 인물과 훌륭한 선수들에게 힘입은 바 크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열정,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국민적 여망, 이게 원동력이었잖아요. 뒷말·불신·분열을 버립시다. 대표팀을 하나 된 마음으로 응원합시다.” 그의 눈이 붉게 일렁거렸다. 한국축구를 향한 뜨거운 진심과 열망이 묻어났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文정부 ‘통계 조작’ 수사·감사에 강압?...부동산원 노조 “심심한 감사의 마음”
- 다회용컵 이용 때 탄소중립포인트 2배 쌓이고, 모두의 카드 대중교통비 환급 기준액도 절반 낮아
- 지난해 벤처 투자 76% ‘신산업’ 집중…AI·헬스케어 등 쏠려
- 공공부문 단기 근로자에 10% 수당 더 준다
- 하이닉스 조끼 보더니 명품관 직원 ‘돌변’…SNL에 나온 현시점 최고의 밈
- 현대면세점 인천공항 DF2 영업 시작…“공항 연매출 1조원 기대”
- 공소장 못 받아 재판 못 나갔는데 유죄 확정…대법 “재심 사유”
- 핀플루언서가 직접 단 리딩방 권유 댓글, 알고 보니 ‘사칭범’
- 주택대출 금리 28개월만에 최고…‘일단은 싼’ 변동금리 대출 계속 증가
- “3년 시정조치에도 경쟁제한 우려 해소 안 돼” 공정위, 한화·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시정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