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이혼’은 임시 도피, 완벽한 결혼은 없다[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15)

고혜련 칼럼니스트 2026. 4. 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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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뉴시스

최근 어느 TV방송에서 이혼 부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를 시작하자 “뭐 그런 것까지?”라는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마침 결혼 30년 이상 된 부부 이혼이 ‘최고치’라는 보도까지 접하니 얘기가 마구 번져 나갔다.

“요즘 남편한테 말조심해야 돼. 걸핏하면 자기를 무시한다네.” 별일 아닌 걸로도 자주 다투게 된다는 지인들 얘기다. 그중 한 친구, “수십 년 같이 살아온 남편이 퇴직 후 달라져 남과 사는 것 같다”면서 상황이 악화해 뛰쳐나와 어느 산속의 ‘템플스테이’에 ‘잠입’했단다. 당분간 떨어지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대안을 찾는데 좋을 듯해서다. “시간이 넘쳐 쩔쩔매기에 설거지 좀 하랬더니 무시하냐는 거야” “식사 도중 아들 반찬을 챙겼더니 차별한다네” “점심 좀 차려 먹으라니 돈 벌어올 때만 잘해주는 기회주의자라나”. 다들 잘 이겨내는 줄 알았는데 상처가 곪고 있었던 거다.

친구는 심리분석에 들어갔다. 외벌이였던 남편 머릿속에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일생을 바쳤다”는 생색내기와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퇴직 후 맥없이 소일하다 보니 자존감과 인내심이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더구나 식구들과 소통도 잘 안 되니 소외감에다 이제는 돈 버는 자식에게 말발이 안 먹힌다는 기분이 들어서란다. 또 육아 및 집안노동은 여전히 ‘놀고 먹는’ 정도로 여긴다는 것. 부부싸움이 잦자, 더 이상의 희생은 무가치하니 늦게나마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욕구가 서로 치솟는다고.

3월 국가데이터처 발표.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지난해 ‘황혼이혼’은 1만5600건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이혼 건수(8만8100건)가 3.3% 감소한 것과 정반대다. 이혼 부부의 혼인지속기간별 비율을 보면 30년 이상이 17.7%로 가장 높다.

‘황혼이혼’ 급증은 사회상 변천과 맞물린다. 수명 연장으로 향후 20년 이상을 더 다투며 산다는 두려움, 또 개인행복을 우선시하는 가치관과 성 역할 변화, 재산분할 시 여성들의 법적권리강화로 이혼 후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는 인식전환에서 온 것. 서울가정법원 근처 양재역 지하철 통로는 성업 중인 이혼 전문 변호사 광고가 넘쳐난다.

하지만 상담 전문가들은 “황혼 이혼은 불안한 임시 도피처다. 설사 재혼을 해도 일대일 결합이 아니라 상대의 자식·가족들과 얽혀져 흔히 다시 헤어진다”고 한다. 자충수라는 얘기. 이미 30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그럴 만한 공동 목표가 있어 잘 버텨왔다는 소중한 증거다.

결혼을 깊이 통찰한 미국 심리학자 아널드 라자루스는 “결혼은 서로의 삶에 돌진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한때의 낭만적 사랑이 좋은 결혼 생활을 끝까지 보장하리라는 환상을 버리라”(‘결혼의 신화’에서)고 한다. 결혼은 둘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라고 만든 생활의 한 방편이란 거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 말에 부쩍 수긍이 간다. 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의 세월이 숙명이며 감사한 일이라는 자각이다. 그것도 어느 날 불현듯 한 사랑에 빠져 ‘가식 없는 민낯’에 ‘무조건 내 편’인 양 살았으니 지고한 노력이 빚어낸 기적의 세월이다.

독일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도 “사랑은 주는 것, 책임감을 갖고 이해·존중하는 것”(‘사랑의 기술’에서)이라 토로했다. 또 같음이 아닌 다름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얘기다. 그러니 사소한 언쟁이 불씨가 된 결별을 고민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거다. ‘생존본능’이 우선인 인간은 노고를 칭찬, 사랑해 달라는 갈증 속에 사니 역지사지하며 측은지심을 발휘해 보는 거다. 감사할 이유를 찾으면 내 안의 행복 스위치가 절로 켜져 선순환을 부른다. 이제 결혼 30년 ‘전우애(戰友愛)’에 연마된 성숙함으로 서로의 공간·역할을 존중하는 ‘같이 또 따로’. 즉 각각의 줄기로 하늘을 열어가는 연리지(連理枝)의 ‘이심이체’를 실행해 보는 거다. 한때 ‘일심동체’까지 탐했던 결혼이 최선이 아닐지라도 차선이거나 최악을 피하는 방법 정도라면 쓸 만한 거다. 완벽한 사랑과 결혼은 없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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