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에 갑질, 명품과 사교육엔 환장… 배꼽 잡다 “혹시 내 얘긴가?”
한국 여성 군상 풍자
이수지 신드롬 분석

이쯤 되면 코미디가 아니라 사회 고발이다. 코미디언 이수지가 혹사당하는 유치원 교사를 연기하면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공개된 지 열흘 만에 500만뷰를 돌파한 16분짜리 영상 ‘극한직업-유치원 교사 이민지씨의 끝나지 않는 24시간’은 가혹한 돌봄 노동과 학부모의 민원·갑질 등 보육 현장의 민낯을 드러냈다.
손목보호대를 찬 ‘3년차 이민지 교사’는 “아이들을 오래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아이고 어머니 그러셨어요”라며 밝은 목소리와 미소, 끝없는 공감과 긍정으로 무장한 프로.
그러나 “우리 애 엉덩이는 성분 좋은 물티슈로 닦아달라” “MBTI에 맞춰 반을 바꿔달라” “인생샷 남기게 아이폰으로 찍어달라” “주말에 압구정 로데오엔 왜 갔느냐”며 닦달하고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부모들을 응대하다 목이 쉬고 귀에선 피가 흐른다.

댓글창은 사회적 공론장이 됐다. 전·현직 교사와 가족 등이 수만개 댓글로 “영상은 순한 맛이다. 현실은 더하다” “보면서 트라우마가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며 울분을 쏟아냈다. 특히 영상에서 한 엄마가 “애 아빠가 화 많이 났어요”라며 힘없는 여교사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사람들은 “이수지 영상이 진짜냐”며 놀라고, “키즈노트(어린이집 알림 앱) 사진을 금지시키자” “진상 부모들 퇴소시켜라” “부모 비위를 맞추라고 강요하는 원장들도 문제”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최근 부천의 유치원 교사가 독감에도 못 쉬고 일하다 숨진 사건과 겹치면서 전국 유치원 운영 실태와 교사 처우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는 이수지가 지난해 ‘대치동 제이미맘’ 연기로 기이한 유아 사교육 열풍을 저격한 것과 비슷하다. 그는 고가의 명품을 두르고 나긋한 말투를 쓰면서 포장된 자녀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된 계층을 풍자했다.

당시 이수지 탓에 희화화된 몽클레르 패딩이 중고 시장에 쏟아지고 “종일 자녀 학원 라이딩을 한다”는 여배우에게 분노의 불똥이 튀는가 하면, 영어학원 입시인 ‘4세·7세 고시’를 금지하는 입법까지 나왔다.
이처럼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세밀하게 모사해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극사실주의) 코미디’는 요즘 코미디의 대세 문법이다. “맞아, 저런 사람 어디선가 봤어”란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좋다.
김헌식 중원대 특임교수는 “원래 개그는 흉내에서 출발하는데, 과거엔 그 대상이 노인이나 아이, 사투리 쓰는 지방민처럼 막연하게 정형화돼 있었다면 이수지는 건드리기 예민한 현상을 정면으로 다뤄 사회적 각성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당초 이수지가 모사로 유명해진 건 조선족 보이스피싱단 ‘린자오밍’으로, 조롱해도 된다는 명백한 합의가 있는 캐릭터였다.
이어 그는 허영과 가식으로 뭉쳐 어딘가 뒤틀린 한국의 여성 군상을 인간 복사기처럼 그려냈다. 또래 여성을 챙겨주는 척 사기 치는 공구 인플루언서 ‘슈블리맘’, 예쁘고 연약한 척 자의식 과잉의 ‘에겐녀 뚜지’, 잠든 아바이 옆에서 먹방하며 권력을 즐기는 ‘북한 BJ 김두애’, 인자한 듯하지만 권위주의에 찌든 노부인 ‘황정자 여사’ 등이다.
이 중 유독 ‘대치동 제이미맘’과 ‘이민지 교사’가 여론과 만나 사회적 이슈로 폭발했다. 그만큼 부유층 주부들이 주도하는 사교육 열풍이나 맘카페의 집단행동에 반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지금 온라인에선 “맘충들 죽이고 싶다” “애 낳은 게 훈장이냐” “한국 여자들이 이래서 이혼율이 높은 것”이란 비난과 “엄마들이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됐다”는 반격이 오가고 있다.

여성계에서도 이수지 신드롬을 두고 설왕설래다. 오수경 작가는 “풍자는 약자의 무기일 때 의미가 있다. 특정 계층이나 성별을 희화화하고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애먼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자녀 양육 책임을 엄마가 떠맡는 핵가족 문화, 취업난이 불러온 사교육 열풍, 저출산 속 아이에게 예민할 수밖에 없는 육아 환경, 보육업계 고용 불안과 착취 관행 등을 놔두고 ‘맘충 혐오’로 귀결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이정옥 작가는 “남녀 모두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유독 여성만 놀림이나 비판을 받지 않아야 한다면 ‘벌거벗은 임금님 사회’란 얘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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