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로 산 하나 옮겨온 듯…5개 봉우리 있는 ‘붓 받침대’
낡지 않은 골동이야기

문방사우란, 조선 선비들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늘 곁에 두던 4가지 문구를 벗(친구)에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글을 쓸 때 필요한 네 가지의 보물이라고 해서 ‘문방사보’, 혹은 황제를 보필하던 제후에 빗대어 ‘문방사후’라 부르기도 한다. 종이(紙), 붓(筆), 벼루(硯), 먹(墨). 선비의 방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지필연묵’을 선비들은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던 고요한 수행의 동반자로 여겼는데, 그 하나하나마다 상징하는 미학이 다 다르다.
종이는 선비의 순수한 초심을 담았다고 일컬어진다. 거친 붓질도 묵묵히 받아내고, 먹물이 번져나가는 찰나의 흔적을 영구히 기록하는 도구이기에 제 몸을 내어주어 사상과 예술을 꽃 피우는 겸손함의 미덕을 상징한다. 대나무의 곧은 성품과 짐승의 부드러운 털이 만난 붓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선 자태와 사용자의 숨결 하나까지 실어 표현하는 성실함 때문에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고 한다. 단단한 돌로 만드는 벼루는 세월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상징이고, 오목하게 패인 자리에 고인 먹물은 지혜의 샘이자 차분하게 가라앉은 내면의 평화를 상징한다. 제 몸을 갈아 검은 빛을 내뿜는 먹은 희생과 인내의 정수로서 은은한 향까지 품고 있어 선비들의 절제된 삶 속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붓 받침대는 이 문방사우가 무대 위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돕는 완벽한 조연인데, 영화에서 빛나는 조연을 ‘신 스틸러’라고 부르듯 붓 받침대의 실용성과 멋이 문방사우 못지않다.
일단 산수(山水)를 닮은 생김이 볼수록 멋지다. 책상 위로 작은 산 하나가 옮겨온 듯하다. 붓 받침대 앞뒤로 사슴·구름·불로초 등 십장생을 닮은 문양이 양각돼 있어 그 산 풍경이 어떨지 상상케 한다. 붓을 쓰지 않으니 잠시 바라보는 게 전부인데, 이 작은 자연이 은근히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준다. 가끔은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는데 나무의 따뜻한 질감과 양각의 투박함이 기분 좋다.
옛 선비들은 이 붓 받침대에 붓을 걸어 놓을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다음 문장을 또는 다음 그림을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에 골몰했을 것이다. 그래서 붓 받침대를 ‘사유의 정거장’이라 부르나 보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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