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로 만든 실 한올 한올이 세상 뒤덮는 상상”
한지의 변신

![고 박서보 선생의 대표작 ‘묘법’ 연작을 태피스트리로 옮긴 작품. [사진 포목]](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8/joongangsunday/20260418002036826qlpj.jpg)
‘포목’ 건물이 들어선 세검정은 조선시대 때 서적에 필요한 한지를 제조, 관리했던 조지서가 있던 곳이다. 이번 전시의 핵심도 ‘한지’다. 배 대표가 이렇게까지 한지를 키워드로 내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포목’에서는 한지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원단을 짠다.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한지 사(絲)를 특허 내고 ‘멀벡사’라는 이름도 붙였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빔스, 골드윈, 유나이티드 애로우, 베이 크루즈 등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은 의류 브랜드들의 책임자를 만나 상담도 했다. 자국 원단 산업이 활발한 일본이지만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며 상담을 이어갈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 산업으로서 세계에 소개되기를 바랐던 배 대표의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한지에 백자를 수놓은 배영진 대표의 작품. [사진 포목]](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8/joongangsunday/20260418002038104akoe.jpg)
이후 브랜드 ‘꼬세르 배영진’을 운영하면서 김옥숙·이희호·권양숙 여사 등 역대 영부인들과 박서보 화백 같은 예술인, 고두심 등 배우들의 옷을 만들었다. 2007년에는 크게 히트 친 드라마 ‘궁’의 의상 제작 총괄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내 사업이 잘 되는 것과는 별개로 한복의 현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어요. 대중이 한복을 더 많이 입게 된 것도 아니고, 한복을 현대화 하기 위한 정부의 논의도 제자리걸음이었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옛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었는데, 그 모멘텀을 나 혼자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정부와 주변 디자이너들에게 쓴 소리 하는 악역을 맡기도 싫고. 딱 20년이 되는 2013년에 꼬세르를 미련 없이 접었죠.”
이후 배 대표가 골몰한 분야는 ‘원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패션 산업에서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소재, 즉 원단이 기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단의 색감·질감·촉감·구조에 따라 옷이라는 결과물은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수 있죠.” 15년간 원단 사업에 매달리면서 글로벌 패션 하우스에서 의뢰 받아 트위드·자카드·누빔·천연 염색 등 다양한 원단을 제작해 납품하기도 했다.
동시에 한지로 원단 만들기를 연구했다. “한지는 루브르박물관이 예술품 보존을 위한 소재로 채택하고 그 가치를 인정한 것처럼 오래 가고, 통기성도 좋고, 몸에도 좋고, 닥나무를 베어서 쓰는 게 아니라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만들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인 소재죠. 하지만 한지를 얇게 찢어서 꼬아 실을 만드는 일은 현대의 과학적 기술이 접목돼야 가능해요. 원단을 만들 정도의 실이 되려면 그 두께가 균일해야 하는데 그 기술이 의외로 까다롭고 어렵거든요.”
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플리츠 플리즈’는 이세이 미야케라는 출중한 디자이너의 역량도 있었지만 플리츠 기법의 주름 원단을 개발했기에 글로벌 확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원단은 여름 소재라는 단점이 있다. 두꺼운 방한용 옷을 만들 수 없다. 반면 멀벡스는 그 비율을 달리 해서 울·면·나일론 등 어떤 원단과 합사하는가에 따라 한지의 장점은 살리고 디자이너의 창조성은 십분 발휘될 수 있다고 한다.
“실 한 올의 힘이 뭐 그렇게 대단할까 하겠지만, 그 실 한 올이 원단이 되고, 잘 만든 원단은 옷 뿐만 아니라 가구 등 원단이 사용되는 모든 산업에 활용되죠. 실 한 올이 천 갈래 만 갈래로 퍼져서 세상을 덮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엄청나죠?(웃음)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디자이너가 나와서 한지를 이용한 실로 옷을 만들고, 그 옷이 세계로 소개되는 꿈을 꿉니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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