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은 어떻게 인류 진화 이끌었나

2026. 4. 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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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이브들
캣 보해넌 지음
안은미 옮김
시공사

종종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책을 만난다. 『최초의 이브들』도 그렇다. “왜 이걸 떠올리지 못했지?”라고 감탄하면서, 동시에 사태를 바라보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인류의 진화에 관해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들이 모여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이루고,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들이 재배열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표면적인 주장은 간단하다. 인간은 사냥을 잘해서 성공한 존재가 아니라, 실패하기 쉬운 출산이라는 과정을 협력으로 극복해서 성공한 존재라는 것이다.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진술이다. 현생인류 출현 이전부터 호미닌(인간류)의 출산은 종의 존속을 좌우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것만으로도 중요한 지적이지만 이 책의 진정한 공헌은 따로 있다.

제목에서 엿보이듯이 글쓴이는 단 하나의 ‘이브’를 거부한다. 인간 여성의 몸을 구성하는 특성과 장기들은 출현한 시기와 목적이 제각기 달랐음을 강조한다.

영장류 이전만 봐도 그렇다. 공룡들이 생존했던 2억여 년 전 족제비와 쥐의 잡종 같은 생김새의 모르가누코돈이 ‘젖먹이기’의 이브라면, 공룡들이 소행성 충돌로 멸종하던 6000여만 년 전 족제비와 다람쥐를 닮은 프로툰글라툼은 ‘태반’의 이브다. 영장류식 감각계는 물론 어쩌면 입덧도 약간 늦은 시기의 원숭이-족제비-다람쥐인 푸르기토리우스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인간 여성의 몸은 수억 년의 세월과 여러 ‘이브’의 유산들이 한 몸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동시에 그럭저럭 잘 작동하고 있는, 그 자체로 놀랍고 경이로운 존재다.

읽다 보면 하나의 이상형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아랫배 지방과 엉덩이 지방은 성분도 좀 다르고, 태아 성장 과정에 쓰이는 용도도 다르다. 젖가슴의 크기와 수유량은 별 상관없다. 또 처진 젖가슴은 아이의 생존과 성장에 요긴한 도움을 준다.

저자는 한편으로 인간 여성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한다. 협력 출산은 인간만 아니라 보노보에서도 관찰되고, 월경 현상이 나타나는 포유류도 여럿이다. 개중에는 자그마한 땃쥐류도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범고래도 폐경을 겪는다.

종래의 할머니 가설에서는 폐경 이후 인간 여성이 손주 양육에 참여하는 점만을 중시했다. 그런데 할머니 세대가 손주 세대 양육에 활발히 개입하는 코끼리들은 폐경을 겪지 않는다. 반면 할머니 범고래는 손주 양육보다 무리의 먹이사냥에 집중 개입한다고 한다. 어쩌면 할머니들 덕분에 사냥 성공률이 좀 더 높았을 수도 있겠다.

결국 이 책은 개개의 생물을 특정 원형의 불완전한 복사본으로 보거나, 생물의 현재형을 궁극적인 완성형으로 보는 폐해를 벗어던지도록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이는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공헌이다.

“우리가 바로 이런 몸이다. 고통스럽든 행복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병에 걸렸든 죽어 사라질 때까지 건강하든, 우리 몸과 뇌가 그냥 우리다.” 저자는 인생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뒤늦게 박사과정에 진학해 40대 중반에 문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역정이 이 문장과 통찰의 원동력인 듯싶다.

이관수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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