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도 K자 양극화, 초저가 아니면 초고가 불티…‘중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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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쏠림 현상 심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민간소비’가 양 갈래로 찢어지고 있다. 몇 년째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는 ‘가성비’ 제품이 아니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부동산·주식 가격이 급등하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하는 ‘프리미엄’(이른바 명품) 제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소비 양극화는 한국 경제의 회복력을 약화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최근 국내 최대 규모로 리뉴얼 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매장(위 사진), 지난해 매장 크기를 확 넓힌 다이소 고양 스타필드 마켓 킨텍스점.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8/joongangsunday/20260418003504604mlsw.jpg)
13살, 9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김선화(37)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아이에게 인기 브랜드 옷을 사 입히기도 했는데, 요즘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물가는 오르는 데 소득은 늘지 않으니 서민으로서는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클로 등 주요 SPA 매출 3조원 돌파
민간소비가 ‘두 개의 시장’으로 쪼개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몇천원대의 초저가나 최저가 가성비 소비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명품 보석·가방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가 반도체 등 ‘되는 산업’만 되는 ‘K자형’으로 굳어지고 있는 데다 부동산·주식 가격 급등으로 자산 격차마저 커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주요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1조3500억원)·탑텐(9000억원)·스파오(6000억원)·무신사스탠다드(4700억원)·에잇세컨즈(3000억원)의 합산 매출액은 3조원을 돌파했다.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 측은 “미얀마·인도네시아 등지에 직영 생산법인을 운영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게 주요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마트·롯데마트 등 기존의 대형 오프라인 유통사까지 초저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말 초저가 생활용품 편집숍 ‘와우샵’을 론칭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오늘좋은’과 ‘요리하다’와 같은 PB(유통사 자체 브랜드) 상품을 통해 가격 인하와 균일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우유와 물티슈, 소스류 등 필수 소비재를 중심으로 판매가 늘고 있다는 게 롯데마트 측의 설명이다. 홈플러스 역시 PB 상품인 ‘심플러스’를 앞세워 1000원대 스낵과 냉동식품, 음료, 위생용품을 선보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초저가 전략은 일회성의 단순한 가격 인하가 아니라 고물가 시대 소비를 자극하는 전략적 사업 모델”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가성비 소비가 인기지만, 한쪽에선 수천~수억원대의 보석 등 이른바 고가 명품도 잘 팔린다. 경기 불황과는 무관하게 사치재에 지갑을 여는 ‘베블런 효과(과시욕구로 상품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느는 현상)’의 한 단면이다. 실제 국내 3대 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3월 하이주얼리(고가 보석을 소량 제작)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평균 59.6% 상승했다. 이들 제품은 싸게는 수백만원대부터 비싸게는 수억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연 매출 800억원 이상인 주요 명품 브랜드 한국법인 14곳의 지난해 총매출도 9조2700억원으로 2024년(8조5719억원)보다 8.1% 증가했다. 이 덕에 백화점 3사의 주가도 최근 큰 폭으로 올랐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 “한국 매출만 증가”
전 세계적으로 명품 수요가 위축되는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세실 카바니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중동 전쟁과 경기 침체로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의 매출이 감소했지만 한국 매출만은 유일하게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업계는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를 높이기 위해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이른바 ‘에루샤’를 비롯한 명품 유치와 매장 대형화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민간소비가 두 갈래로 쪼개진 건 소득 양극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득 5분위 가운데, 상단인 4분위(상위 21~40%)와 5분위(상위 20%)는 소득이 각각 3분기보다 3%, 6.1% 증가했지만 3분위(상위 41~60%)와 2분위(하위 21~40%)는 각각 1.7%,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집계한 소득 5분위 배율은 5.59배로 1년 전보다 0.31배포인트 상승했다. 4분기 기준으로 2021년(5.71배)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배율이 높아졌다는 건 상·하위 소득 격차가 커져 분배가 악화했다는 의미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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