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36] 실패한 건축 살려낸 한인 레스토랑


건축에서 모더니즘은 네모난 형태 일색으로 지루한 회색 도시를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역사적 맥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친숙한 모티프를 도입해 대중과 친밀하게 소통하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지어진 건물 중 하나가 뉴욕 맨해튼의 ‘550 매디슨 애비뉴’다. 현재는 주소를 건물명으로 사용하지만, 원래는 통신 회사 AT&T의 사옥이었다. 1984년 거물 건축가였던 필립 존슨이 당시 유행한 포스트모던 양식으로 설계했다.
완공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치펜데일(Chippendale) 마천루’라 불렀다. 꼭대기의 삼각형이 18세기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치펜데일의 가구 모양을 닮아서 붙인 별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올려다보면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다. 무엇보다 실패한 부분은 건물 입구에 있는 회랑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은유한 육중한 기둥들은 시민 통행을 기능적·심리적으로 방해했다. 더구나 노숙자들이 상주하는 바람에 뉴요커들이 꺼리는 장소가 되었다. 건축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고, 결국 평범한 사무용 빌딩에 약간의 장식을 더한 수준이었다.
이 건물은 한때 일본 소니가 인수해 ‘소니 타워’로 불릴 때가 있었다. 소니는 실패한 회랑을 폐쇄하고 자사 제품을 전시·판매하는 ‘소니 원더(SONY Wonder)’를 개관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이 건물은 지금은 다국적 투자회사 오래이안(Olayan)의 소유다. 문제의 1층 공간에 오늘(18일) 한국인 사업가 김시준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문을 연다. 3개 층에 걸쳐 스테이크하우스인 ‘꽃’과 다른 두 레스토랑이 락웰(Rockwell) 디자인으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누가 어떤 장소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공간은 탈바꿈한다. 건축가의 실패를 극복하고 재탄생한 이 공간이 사랑받는 모습이 기대된다. 이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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