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보다 무서운 병동”…고밀도 구조 바꾸면 트라우마 줄어
‘다인실 고밀도 구조’ 국내 정신병원
면적 넓히고 복도구조·채광 개선을
물리적 환경 영향력 충분히 입증돼

정신병원의 높은 공간 밀도가 환자 간 갈등과 공격성을 증가시키고 의료진의 통제 필요성을 키워 격리·강박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신장애 인권활동가는 “병보다 병원이 더 무섭다. 정신병원 병동 환경 개선은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닌 당사자의 생존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와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이룸센터에서 ‘2026 정신의료기관 시설·환경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열고 정신병원 시설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전하며, 정부 차원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앞서 인권위는 정신의료기관 진정·직권 방문조사 과정에서 병원별로 시설 환경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의료·건축·법률 전문가로 된 연구진을 구성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울산 반구대병원 직권조사 등을 담당한 권미진 인권위 장애차별조사2과 조사관과 정신의료기관 실태조사를 이끈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각각 ‘진정·직권·방문조사 결과로 본 정신병원의 물리적 환경’과 ‘2025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토론자로는 이승지 인천가톨릭대학교 융합디자인학과 교수,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서영수 다움병원장, 강지언 연강병원장(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장), 최정상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이 참여했다.


권미진 인권위 조사관은 정신의료기관 시설환경과 관련한 인권침해 사례 발표와 함께 우수하거나 부적절한 병동 및 보호실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준 뒤 인권위 권고안을 소개했다. 주요 인권침해 사례로는 2020년 이격 거리 없는 온돌식 밀집 병상으로 인해 코로나19 집단감염과 함께 첫 사망자가 발생했던 청도대남병원과 2024년 응급 입원환자가 벽과 침대 사이에 몸이 껴 사망한 채 발견된 서울 해상병원, 2019년 환자가 하루 평균 20마리의 빈대를 잡고 빈대에서 피가 툭툭 터질 정도로 심각하게 물리는데도 병원 측이 피부과 외진을 거부해 문제가 된 인천 블레스병원 사건 등이 소개됐다. 남녀혼합 병동 화장실에서의 성폭행(2022년), 남성 병동 샤워실 창틀에 목을 맨 환자(2022년), 화장실 시시티브이 설치로 인한 사생활 침해(2018년), 안전장치가 미흡한 4층 창문에서의 환자 추락사(2023년) 사례도 있었다.


인권위는 최근 잇단 중증 지적장애인 환자 사망사고와 96일에 걸친 환자 격리가 드러난 울산 반구대병원을 검찰에 고발하며 “청소 담당자를 고용하고 위해시설을 점검하는 등 병동환경을 개선할 것”을 권고안에 넣기도 했다. 권미진 조사관이 전한 권고안에는 “(조사 대상 병원에)채광·통풍이 가능한 시설로 개선할 것”, “(보건복지부 장관에) 도심 밀집지역에 소재한 빌딩형 건물에서 폐쇄병동을 운영하는 정신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병실의 채광·통풍·환기·실외산책 및 운동 등에 대해 실태 조사하고 정신의료기관 시설환경 최저기준을 마련할 것”등도 있었다.
김성완 교수는 정신 의료기관 172곳 도면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정신병원 특징을 “다인실 고밀도 구조”라고 정리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정신병원의 병상당 평균 연면적(13.08㎡)은 (상급)종합병원 정신병동(28.63㎡)의 절반 이하 수준이고, 보호실(격리실) 평균 면적도 7.6㎡로 종합병원(12.27㎡)과 차이가 컸다. 병동 유형은 조사 대상 병동 평면 383건 중 83.6%가 (가운데 복도가 있고 양편에 병실이 있는) 중(中)복도형 구조로, 복도 공간에서 자연채광 확보, 외부 조망, 환기 등 치유 환경의 핵심 요소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 저밀도 공간으로의 시설 개선과 인력 및 운영 체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저수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승지 인천가톨릭대학교 융합디자인학과 교수는 “물리적 환경이 정신질환자의 치료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충분히 입증돼 있다”며 “정신과 병동의 설계 방식이 환자의 공격적 행동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며, 강제 주사와 신체 강박의 빈도 또한 낮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은 입원실 병상 수, 최소 면적 등 의무적인 양적 지표에 한정돼 있고, 보호실의 채광·환기·소음·마감재·가구 사양 등에 질적 기준은 부재하다”며 “일반병원에서는 무해한 샤워 호스, 수건걸이, 핸드레일이 정신과 병동에서는 자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법령 어디에도 반영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신장애 당사자로 토론에 참여한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병보다 병원이 더 무섭다”는 말부터 꺼냈다. “좋은 병동은 사람을 살리고, 나쁜 병동은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화가이기도 한 이 대표는 자신이 폐쇄병동 입원 당시 그렸던 그림을 보여주며 “당사자들은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회복을 얻고 누군가는 영구적인 트라우마를 얻는 현실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구조적 불평등이다. 국가가 보호실 모형이나 병동 설계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민간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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