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토에서 강력지지로…한국 폴란드 정상이 손잡은 60조 방산의 비하인드 스토리
한국과 폴란드의 대형 방산 협력이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겉으로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날트 투스크 총리의 정상회담이었지만 실제로는 60조원 규모로 거론되는 방산 계약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특히 한때 이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제동을 걸었던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한국을 찾아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유럽 방산 시장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는 분기점으로 읽힌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명확했다. 한국은 폴란드를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싶고 폴란드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키우고 싶다. 문제를 풀어갈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양국 정상의 의지다.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과 폴란드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국가 관계를 격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양국 간 442억 불 규모의 방산 총괄계약 체결 및 이후 이어진 후속 이행계약 체결을 높게 평가하며 우리 기업의 현지 생산 및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노력 등을 강조하면서 잔여 이행계약의 체결도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투스크 총리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투스크 총리는 한국 방산의 신뢰성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고, 양국 간 협력이 폴란드의 자체 방산 역량 제고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거대한 협력 관계는 단순히 두 나라 정상의 의지만으로 굴러가진 않는다. 폴란드 내부 정치와 유럽연합의 방산 정책 그리고 금융 지원 구조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칫하면 대형 계약이 중간에서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투스크 총리의 방한은 외교보다 더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국-폴란드 정상회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분위기를 살펴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은 국방비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그동안 나토 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해 왔던 미국의 압박도 있었고 전쟁이 유럽 대륙 가까이에서 벌어지자 각국은 더 이상 안보를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3%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고, 특히 전쟁중인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는 5%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공격적인 방침을 세웠다.

유럽연합은 방위비 확충을 위해 2030년까지 유럽산 무기 비중을 50%로 확대하는 ‘유럽 방위 산업 전략’을 세웠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로 명명한 1천500억 유로(약 238조원) 규모의 무기 공동조달 대출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를 늘리면 미국, 한국 등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유럽연합은 유럽이 돈을 쓰고 유럽외 국가가 돈을 버는 구조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각국의 재무장을 지원하되, 유럽 지역 내에서 무기를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세이프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체 비용의 65%를 유럽 지역 내에서 집행해야 한다.
한국과 폴란드의 방산 협력은 이점까지 염두에 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2년 포괄적 계약을 맺었을 때 1차 계약은 당장 급한 무기 수급에 방점을 뒀고, 2차 계약부터는 폴란드 현지화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있고 유지보수 체계를 자국 안에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폴란드 내에 제조 공장이 생기고 일자리가 생긴다.

한국 입장에서도 계산은 분명했다. 폴란드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고, 폴란드에서 생산을 함으로써 현지화 비율을 높여 유럽 다른 국가로 영역을 공략할 수 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대형 배터리 공장이 폴란드에 있고 LG전자와 삼성전자 가전 생산기지 역시 폴란드에 자리 잡고 있다. SK 계열의 소재 공장도 있다. 폴란드는 한국 제조업이 유럽으로 확장할 때 이미 검증된 생산 거점이었다. 양국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렇게 2022년 한국과 폴란드는 현대로템이 만드는 K2 전차 980대를 비롯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 한국항공우주의 FA-5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패키지 계약을 체결했다.
이 구상에 처음 제동을 걸었던 것은 다름 아닌 투스크 총리였다. 2023년 선출된 투스크 총리는 집권을 하고 첫번째 행보로 한국과의 방산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수십조원 규모의 사업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폴란드는 총리가 실질적인 행정권한을 쥐는 내각제와 외교 안보를 맡는 대통령이 공존하는 이원집정부제의 정치 체제를 갖고 있다. 친유럽 좌파 성향의 투스크 총리가 당선되자 우파 성향 두다 대통령은 투스크 총리에 대해 쿠데타 혐의로 수사를 지시하는 등 극심한 정치 갈등이 벌어졌다. 이와중에 투스크 총리 역시 우파 전정권이 추진한 정책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투스크 총리가 초기에 문제 삼았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수출금융이었다. 방산 거래는 물건만 파는 사업이 아니다. 대개 수출국이 금융 패키지까지 제공하는 경쟁을 한다. 한국도 폴란드에 저리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구조를 준비했다. 그런데 계약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본금 한도에 부딪혔다. 한국 방산이 그만한 규모의 수출금융을 한 번에 감당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커지자 한국 국방부가 시중은행들을 불러 지원을 요청하는 이례적 장면까지 나왔다. 하지만 폴란드 입장에서는 국가 신용을 바탕으로 한 정책금융이 아니라 민간 금융으로 쪼개 조달하는 구조가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금리는 더 비싸고 절차는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2025년 수출입은행법 개정으로 어느 정도 풀렸다. 법 개정을 통해 수출금융 지원 한도가 늘어나면서 폴란드 계약에 필요한 금융 기반도 한층 안정됐다. 지적한 금융 지원 문제가 풀리자 투스크 총리는 다시 현실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 집권 직후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중요했지만 막상 국정을 운영하며 폴란드에 가장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지 계산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런 반전의 결과였다.
하지만 변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폴란드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내부 권력구조 때문이다. 지난해 폴란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투스크 총리와 바람과 달리 친트럼프 성향, 미국과의 협력을 전면에 내세운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당선 됐다. 투스크 총리는 유럽연합의 방산 금융 지원 프로그램, 세이프 자금을 활용해 한국과의 방산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달 27일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폴란드 대통령은 의회를 통과한 법안을 거부하고 새 법을 제안하거나 헌법재판소에 보내 위헌 여부 심리를 요청할 수 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유럽연합의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미국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의 자금 지원을 받으면 역내 조달 원칙을 지켜야 한다. 투스크 총리는 유럽 자금을 끌어와 한국과 손잡고 현지 생산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럽 시장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유럽 자금에 의존하는 대신 미국산 무기 도입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 결속을 강화하고자 한다. 미국산 무기를 선택할 때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는 불분명하다. 나브로츠키 대통령 측은 폴란드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을 매각해 조달하겠다는 건데, 현실성이 높진 않다.

이번 정상회담이 중요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투스크 총리가 한국을 찾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까지 선언한 것은 단순한 의전이 아다. 양국이 이제 방산을 포함한 핵심 산업에서 서로를 장기 파트너로 보겠다는 의미다. 방산은 그동안 민감한 안보 분야여서 접근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민감성 때문에 양국 관계를 더 단단하게 묶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나라이고, 폴란드 역시 지리적 이점과 우수한 노동력, 기초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강국"이라며 "양국의 강점이 호혜적 방식으로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협력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이후 한국과 폴란드 사이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을 보면 이재명 대통령 언급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투스크 총리는 "한국 입장에서 어려운 시기에 이 대통령께서 모범적인 부분을 보여주셨음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폴란드만이 아니라 유럽과 전 세계가 대통령님의 노력에 감탄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럽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려는 투스크 총리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한국과 폴란드의 협력 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했고, 더욱 공고해졌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써의 양국 관계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숙제는 이제 투스크 총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