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환율 하락’ 공식 깨졌다…“해외투자·저축 증가 탓”
(시사저널=이주희 디지털팀 기자)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저축률 상승으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한은이 17일 공개한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됐지만 원-달러 실질환율은 꾸준히 상승(원화 절하)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우리나라 재화에 대한 해외 수요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보통 원화 가치 절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015년까지 경상수지가 흑자이면 실질환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2023년 이후엔 경상수지 흑자 폭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환율이 더 큰 폭으로 뛰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대외자산이 과거와 달리 민간 부문의 해외 자산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꼽혔다. 과거엔 경상수지로 축적된 대외자산 대부분이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등 준비자산의 형태로 축적됐으나, 2010년대 이후엔 준비자산 외 대외자산이 급증했다.
특히 민간 부문의 해외 주식, 채권 투자가 크게 늘면서 자본 유출이 심화했다. 국가별로는 미국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대외 증권투자 중 63.4%가 대미 투자로, 선진국 평균(25.3%)을 크게 웃돌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지현 한은 국제금융연구팀 과장은 "경상수지 흑자로 우리나라 상품의 수출이 늘어 환율을 내리는 현상을 '상품 충격', 국내 거주자의 해외 자산 투자로 인한 자본 유출이 환율을 올리는 현상을 '금융 충격'으로 명명했을 때, 2015년 이후 금융 충격 빈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외자산 구성의 변화는 시장 환경에 따라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과거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대외자산을 축적했을 땐 외화 수요가 시장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는데, 이젠 민간 부문의 역할이 외환시장에서 커졌다.
인구 고령화의 심화로 저축이 많아진 것도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2011년 이후 고령화에 따라 저축률이 추세적으로 상승했고, 이를 통해 환율이 오르는 '저축수요 충격'이 나타났다. 저축이 많아지면 국내 소비가 위축되고 그로 인해 공급이 과잉이 되면 기업들은 상품 가격을 낮춘다. 이렇게 국내 재화 가격이 외국보다 빨리 떨어지면 원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는다. 또 이 과정에서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 경상수지 흑자 폭도 확대된다.
김 과장은 "저축수요 충격은 2011년 이후 실질환율의 완만한 추세적 상승에 기여했다"면서 "반면 상품 충격은 2000년대 및 2010년대에는 원화 절상에 기여했으나 최근에는 그 영향력이 크게 약화했다"고 설명했다.
원화는 다른 국가 통화보다 금융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 외환시장 거래량이 다른 주요국보다 적고 투자 주체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충격에 원화 환율 반응 계수는 0.65로 일본(0.38), 미국(0.07), 영국(0.56), 스위스(0.11), 호주(0.36) 등보다 높았다. 국가별 일평균 외환시장 거래량과 환율의 반응 계수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두 변수는 뚜렷한 음(-)의 관계를 나타냈다.
김 과장은 "이는 외환시장의 심도가 깊을수록 금융충격에 대한 환율 반응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며 "외환당국이 추진 중인 외환시장 구조 개선과 MSCI 선진국지수 및 WGBI 지수 편입을 통한 자본유입기반 확충, 투자자 다변화는 외환시장 심도를 강화해 단기적 수급 불균형에 따른 환율 변동성을 완충하고 민감도를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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