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텔레그램 잠입기…‘돈’이면 무엇이든 거래됐다
캡처 불가 ‘비밀대화’·대화 기록 ‘자동 삭제’ 기능도 악용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온라인을 통한 범죄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개방형 SNS에서 시작됐다. 취재진이 MZ세대가 즐겨 이용하는 SNS인 X(옛 트위터)에 '지인' '박제' 등 키워드로 검색하자 수십 개 계정이 나타났다. 이들 계정에는 피해자의 사진과 함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적 비하 발언과 음담패설이 게시되어 있었다. 팔로어가 수천 명에 달하는 계정도 있었으며, 별도의 성인 인증 절차가 없어 미성년자들도 이러한 유해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돈만 입금하면 당일 즉시 마약 거래 가능"
이러한 개방형 SNS는 텔레그램이라는 폐쇄적 범죄 공간으로 유입을 유도하는 '호객 창구' 역할을 한다. 마약 거래도 마찬가지다. X에서 '아이스(필로폰)' '떨(대마초)' 등 은어를 검색하면 판매자들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즉각 노출된다. 취재진이 접촉한 한 마약 판매상은 텔레그램 채널에 거래 후기 사진을 게시하며 신뢰도를 내세웠다. 해당 채널에는 중국·대만·멕시코 등지에서 반입된 마약류 목록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으며, 판매자는 '24시간 대기'를 내걸고 구매를 유도했다.
텔레그램은 가입도 탈퇴도 쉽다. 그러다 보니 음지에서 활동하거나 기록을 남기길 꺼리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마약 판매상들이 텔레그램을 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복수의 예비 계정을 운용하며, 기존 계정이 차단되면 즉시 새 계정으로 갈아타는 치밀함도 보였다.
채널은 개방된 형태였지만, 운영자들은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취재진이 일정 기간을 두고 문의를 이어가자, 마약 판매상 A씨는 "하루에 두 가지 질문만 할 거면 말을 걸지 마라"며 날을 세웠다. 취재진이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하자, 그는 "코인 주소가 매번 변경되고 있다"며 영문 코인 주소를 보내왔다. "가격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수량과 지역을 확인한 뒤 "1그램에 50만원"이라고 답했다. "처음 투약하는 사람은 보통 얼마나 하느냐"는 질문에는 "1그램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 하면 죽는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화가 진척되자 A씨는 "(입금하면) 좌표를 줄 테니 가서 찾아가면 된다"고 안내했다.
또 다른 마약 판매상 B씨 역시 암호화폐를 통한 거래를 요구했다. 그는 "드랍 시간(마약 등 물품을 은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가리키는 은어)이 정해져 있다. 집 근처 드랍을 원하면 추가금이 든다"고 했다. 이어 "보안을 위해 실사용 인증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돈만 입금하면 당일 즉시 거래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다른 판매상 C씨는 비밀대화로만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비밀대화는 텔레그램에서 화면 캡처를 차단하는 기능으로, 보안을 표방하는 본래 취지와 달리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었다. 이마저도 불안했던 탓인지 C씨는 1시간이 지나면 대화 기록이 자동 삭제되는 기능까지 설정해 흔적을 지우려 했다. 취재진이 질문만 이어가고 구매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자, C씨는 "마음의 준비가 확실히 됐을 때 다시 말을 걸라"며 대화 기록 전체를 삭제했다. 신원 확인을 요구하는 판매상도 있었다. D씨는 "경찰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며 "학생이라면 학생증, 직장인이라면 사원증을 인증하라"고 했다.
음지에서 운영되는 '박제방' 역시 수천 명이 가입한 텔레그램 채널 중 하나다. 이곳의 운영자들은 최근 '사적 제재'라는 명목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었는데, 이면엔 철저히 계산된 상업적 동기가 숨어있었다.
취재진은 전국에 있는 폭력배들을 공개 수배한다는 E 채널에 잠입했다. 여기엔 최근 언론보도로 알려진, 13세 초등 여아를 성추행한 20대 과외 교사의 얼굴과 이름, 나이가 담긴 게시글이 게재됐다. 채널 운영자는 엄벌 탄원서를 함께 올리며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채널 중간엔 "계좌를 매입한다"며 "테더(스테이블코인) 처분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 달라"는 홍보글이 끼어있었다. 광고 게재를 원하는 이들을 유인하기 위한 별도 채널도 따로 운영됐다. 여기엔 바카라 공략법을 알려준다는 광고와 홈페이지 제작·온라인 마케팅 광고들이 즐비했다. 사적 제재의 본질이 정의 구현이 아닌 '수익 창출'에 있었던 셈이다. 채널 운영자는 "저에게 돈을 주더라도 게시글을 내려주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광고로 배를 채우는 건 예외였다.

수사기관과의 '친분' 과시하기도
수사기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더 많은 제보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채널의 운영자는 "경기북부청 광수대 형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피해 보신 분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책임져주고 익명을 보장해 준다고 했다. 직접 피해 본 게 아니더라도 범죄사실을 듣거나 증거 있으신 분들도 연락 달라. 형사님을 직접 연결해 드릴 수 있다"며 제보를 독려했다. 취재진이 "형사님이 지켜준다는 게 진짜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확인해 줬다. 물론 이 역시 채널 운영자의 일방적 주장일 뿐,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 채널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취재진이 4월1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잠입해 분석한 자유 소통방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일상을 공유하는 일반적인 대화보다 사적 제재 대상자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소통방 참여자들에 대한 관심이나 질문은 사실상 없었다. 이들은 익명의 그림자 뒤에 철저히 숨어있었다.
'포로수용소' '냄비수용소' '암행어사방' 등도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음지에서 찾는 대표적 채널로 꼽힌다. 각각 특징은 달랐지만, 운영 방식은 비슷했다. 특정 인물의 사진과 이름, 거주지, SNS 계정 등을 무단 게시해 '성매매 종사자'와 같은 허위 낙인을 씌운 뒤 사람들을 채널로 끌어들이는 구조였다. 운영자들은 텔레그램의 보안 기능을 악용해 채널 내부의 화면 캡처를 차단하는 한편, 제보받은 정보를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에 직접 재유포해 구독자를 늘렸다.
신상 삭제를 위해선 피해자들이 운영자들에게 건당 200만~300만원의 금품을 건네야 했다. 채널 내부에 게시된 불법 도박 사이트·대포통장·선불 유심 유통 등의 별도 광고 수익은 덤이었다. 채널 운영자들의 사익을 위해 피해자들의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버젓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취재진이 2주간 마약 판매상 4명과 신상 박제방 등 텔레그램 채널 10곳에 잠입 취재한 결과, 이곳은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채널 운영자는 수사망 바깥에 공고히 자리한 채, 아이디 하나를 삭제하는 것만으로 흔적을 금세 지울 수 있는 사실상 무소불위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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