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에서 합창으로, 결핍 메운 씻김[이주영의 연뮤덕질기](70)

2026. 4. 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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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홍련>·<인화>·<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연극 <말벌>, 오페라 <나부코>
오페라 <나부코>의 대단원. 독주를 마시고 죽어가는 아비가일레와 참회하는 나부코. 서울시오페라단 제공

전쟁의 공포와 4월의 상징성 때문일까?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이 남긴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서울시오페라단이 40년 만에 선보인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종교적 색채는 이 합창에 이르러 공동체의 ‘씻김’으로 승화됐다. 무대 위 노예로 분한 50여명의 성악가와 무대 아래 촛불을 든 채 객석으로 퍼져나가는 60여명 시민합창단의 목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융합하며 객석의 싱어롱(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까지 이끌어냈다. 여기서 ‘씻김’은 억울하게 죽은 존재나 차마 말하지 못한 고통의 기억을 위무하는 집단적 수행 행위를 의미한다. 4·16 세월호 참사 12주기와 4·19 혁명 66주기, 제주 4·3 78주기가 공존하는 4월이다. <나부코>를 비롯해 대표적인 씻김 공연 <홍련>, 기억을 되돌려 자아를 씻어내는 <말벌>과 <인화> 그리고 불안을 넘어 연대로 새 삶을 여는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까지 ‘씻김’의 다양한 변주를 따라가 보았다.

뮤지컬 <홍련>의 절정은 홍련의 고통받는 혼백을 씻겨 천도에 이를 수 있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바리의 절규다. 마틴 엔터테인먼트 제공

합창으로 승화된 공동체의 씻김

오페라 <나부코>(박혜진 예술감독, 장서문 연출, 이든 지휘)는 기원전 5세기 바빌론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의 수난사를 그린다. 유대인을 억압한 왕 나부코(양준모·최인식 분)의 회개와 그의 장녀 아비가일레(서선영·최지은 분)의 몰락을 축으로, 무너진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작품을 상징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침략당한 공동체가 제 정체성을 잊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으로 존재의 지속을 향한 음악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서사를 가진 인물은 나부코가 아닌 그의 장녀 아비가일레다. 출생의 비밀로 인해 아버지에게 정체성을 부정당하자 권력을 쟁취하고 유대인을 살상하며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끝내 독배를 마시고 파멸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 영리한 캐릭터는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 씻김의 기회를 부여한다.

연극 <말벌>의 피해자 헤더와 가해자 카알라의 기억이 구체화되는 과정. 해븐프로덕션 제공

가부장제에서 외면당한 딸의 절망과 폭력성은 뮤지컬 <홍련>(배시현 작·작사, 박신애 작곡, 이준우 연출, 이성준 음악감독, 김진 안무, 남경식 무대, 신동선 조명)에서 구체화한다. 한국 설화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를 결합해 구조적 부조리에서 희생된 여성의 한을 공동체 의례로 풀었다. 버려진 딸이 아비를 살려냈다는 반전 극복 서사의 주인공 바리(이아름솔·김경민·이지연 분)가 ‘천도정’ 수장이 돼 홍련(이지혜·강혜인·김이후·홍나현·한재아 분)의 한을 풀어준다는 서사다. 언니 장화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홍련은 자신의 혼백마저 소멸시키려 한다. 바리와 천도정 차사들은 홍련의 절규 같은 아픔을 모두 들어주고 결국 천도하기에 이른다. 파괴적 독백은 위무의 합창으로 확장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여섯 번 보았는데 매번 마지막 커튼콜에서 관객들의 반응에 목이 메곤 했다. 커튼콜 넘버 “내 얘길 제발 들어줘/ 내 말을 제발 들어줘 (…) 높은 담장 부수고/ 우리 함께해”를 ‘떼창’하며 치유의 공동체를 체험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인화>의 미학과 기묘함의 경계. 인화가 닭과 개구리 해부 사진을 찍는 모습. 네버엔딩스토리 제공

합창으로 확장된 씻김에 비하면 연극 <말벌>(The WASP, 모건 로이드 말콤 작, 이항나 연출, 우주·이시온 음악, 윤푸름 움직임, 최영은 무대, 임재덕 조명, 김주한 음향)은 자기 파괴적이다. 엘리트 직장인 헤더(김려원·한지은·이경미 분)는 다섯째 아이를 밴 동창 카알라(권유리·정우연 분)에게 외도 중인 남편을 죽여 달라고 거액을 제시한다. 학창 시절 카알라가 주도한 집단폭행 트라우마로 고통받은 헤더의 치밀한 복수극 서막이다. 헤더는 중산층의 안정된 세계 안에 있지만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있고, 카알라는 노동계급의 생존 압박 속에서 그 기억을 밀어낸 채 살아간다.

사전적 의미의 ‘말벌’과 동시에 계급·인종적 함의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도 중의적이다. 대모벌처럼 타자의 몸에 알을 낳고 그 몸을 잠식하며 성장하는 생태에 대한 비유와 상징까지 더하면 작품은 더 괴기스럽다. 남편의 내연녀이기도 한 카알라의 몸속 아이는 남편의 흔적이자 헤더로 하여금 기상천외한 복수극을 실천하게 만든 동인이다. 흰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에 의자와 테이블뿐이었던 전반부와 달리 헤더의 기억이 깊어진 후반부는 복잡다단하다. 말벌의 표본, 앙상한 나뭇가지, 변기와 세면대 등이 소품으로 사용되는 폭력적 장면들 속에서 관객은 점차 헤더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실제 무대 위에서 2명의 배우는 등·퇴장 없이 90분간 방대한 대사를 쏟아낸다. 각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티키타카는 관객들을 캐릭터와 같은 감정 상태에 몰아넣는다. 결국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도구로 사용한 헤더에 대한 연민과 고통은 관객들로 하여금 씻김의 원천이 되게 이끈다.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의 반지하 도서실. 예지몽에 대한 불안으로 칩거 중인 명경은 친구들과 불안을 나누면서 서로를 위무하기에 이른다. 홍컴퍼니 제공

개인의 이야기 넘어 공동체의 시간으로

뮤지컬 <인화>(변영진 작·연출, 양지해 작곡·음악감독, 김진 안무, 오태훈 무대, 신동선 조명, 장태순 음향)는 당사자 스스로 각성하며 위무하는 셀프 씻김극이다. 인화(송영미·전혜주·조영화·최수현 분)와 소현(소정화·신의정·임찬민·홍지희 분)은 자아를 외면해온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분열된 심연을 하나의 존재로 수렴한다. 소현은 젊은 시절 죽음의 경계를 응시하는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닭과 개구리의 해부 장면을 촬영하고, 숲속의 어둠과 생명의 경계를 기록하며, 사라지는 것들의 순간을 붙잡아 독창적 미학을 완성했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다. 나이가 들어 교사로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억누른 예술적 감각에 대한 고통을 잊을 수 없는 그에게 인화가 나타나 모든 감각을 들쑤신다. 동전의 양면인 그들은 무대 위에서 얼굴을 맞대며 스스로를 직시하기에 이른다. 소현은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인화의 발칙한 기행과 확신에 힘입어 과거의 자신이 틀리지 않음을 깨닫는다.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한재은 작·작사, 박현숙 작곡, 이기쁨 연출, 김길려 음악감독, 홍유선 안무, 남경식 무대, 이현규 조명)의 배경은 1990년대 초반 A여고 반지하 도서관. 도서반 학생들이 서로의 사정을 인식하며 학교 비리를 추적하는 연대의 씻김이다. 명경(정우연·이서영·선유하 분)은 예지몽을 꾸는 스스로가 불안하고 두렵다. 꿈속의 사건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를 겪은 후부터 소풍도 수학여행도 거부해왔다. 명경과 함께 도서관에 머무르는 지수(김주연·임예진·전혜주 분), 환희(김청아·백예은 분), 수영(정다예·최민경 분) 역시 각자의 이유로 주변부에 머무는 인물들이다. 문학 교사의 실종과 학교 내부의 금서 문제를 추적하며 점차 서로의 고충을 공유하는 이들은 혼자 보던 것을 함께 보기 시작한다. 은닉의 공간이었던 반지하 도서관은 연대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성인이 된 서로에게 위무와 치유의 기억이 된다. 금지된 책을 함께 읽으며 왜 금지됐는지, 읽는 것이 왜 위험한지, 읽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의 권리인지 질문하는 장면은 연대의 감각을 확장하는 명장면이다. 읽는다는 것은 혼자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판단하는 일이다. 따라서 독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연대의 기술이 된다.

합창은 단순한 음악적 장치가 아니다. <나부코>와 <홍련>의 합창은 공동체가 기억을 유지하는 방식이며, 폭력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말벌>과 <인화>의 독백 같은 인식은 죽은 존재를 현재의 시간 속으로 다시 불러오는 수행이다. 씻김은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처럼 함께 부르는 연대의 노래가 되는 순간 시작되고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공동체의 시간으로 환원된다. <나부코>는 상연이 끝났고, <말벌>과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은 4월 26일, <홍련>은 5월 17일, <인화>는 6월 7일까지 상연한다. 지금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이 서로 다른 씻김의 구조가 우리 자신의 삶과 기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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