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안토니오, ‘명백한 하나님의 뜻’ 유령이 깃든 ‘돈로주의’[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33)

한 여인이 아이와 노예를 데리고 양쪽으로 도열한 멕시코군 사이를 지나 폐허가 된 요새를 떠난다. 존 웨인이 주연·감독·제작한 영화 <알라모>(1960)의 마지막 장면이다.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알라모 전투’는 미국 역사에서 상징적인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전투인 ‘사라토가 전투’처럼 승리한 전투는 아니다. 186명 중 여자와 아이, 노예를 제외하고 183명이 전사한, 처절하게 패배한 전투다. 하지만 그 패배 때문에 텍사스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남부지역을 미국이 가질 수 있게 된 중요한 전투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은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지역도 점령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멕시코의 중심지인 멕시코시티와 중부 멕시코로부터 1500~2000㎞가 떨어져 있어 통제가 어려웠다. 스페인은 지역마다 전도소(Mission)를 두고 신부들이 거주하며 행정업무도 담당했다. 알라모도 이중 하나로, 스페인은 이를 요새로 만들어 기병대를 주둔시켰다.

미국으로 이주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은 남부로 진출하기 시작해 스페인 정부에 텍사스 이주를 요청했다. 텍사스는 버려져 있었기에 스페인은 토지를 임대하고 이주를 장려했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멕시코는 스페인이 허가한 토지 임대를 철회하려 했다. 텍사스 이주민들은 의용군을 조직하고 독립을 추진했다. 샘 휴스턴이 이끄는 의용군은 1835년 12월 알라모 요새를 공격해 점령했다. 샘 휴스턴은 멕시코군으로부터 요새를 지키기 어려워 퇴각을 결정했지만, 138명은 요새를 사수하기로 했다. 1836년 2월 23일, 대통령인 산타 안나 장군이 이끄는 1800명의 멕시코군이 멕시코시티를 떠난 지 두 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의용군들은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탄환이 떨어져 3월 6일 여자와 어린이를 뺀 전원이 전사했다.
알라모의 패배는 ‘저주를 가장한 축복’이었다. 기고만장해진 산타 안나는 이번 기회에 텍사스의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겠다는 생각에 샘 휴스턴이 있는 휴스턴까지 진군했다. 4월 21일, 갤버스턴 근처의 전투에서 샘 휴스턴의 결사대는 긴 행군에 지친 멕시코군을 격파하고 산타 안나를 생포했다. 산타 안나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텍사스를 양보했고, 텍사스는 독립했다.

텍사스 독립전쟁, 미국 우월주의 상징
1980년대 초 텍사스주립대학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텍사스에 도착하자 ‘고향’에 온 것처럼 반가웠다. 알라모 요새에 도착하자 관람객이 많았다. 스페인 전도소를 중심으로 요새를 재건해 놓았다. 끝을 뾰쪽하게 자른 나무를 촘촘하게 세워 방어벽을 만들고, 그사이에 대포를 설치했다.
알라모 전투와 텍사스 독립전쟁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미국 남부로의 확장과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는 옛 스페인 식민지들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정책(구체적으로 미국 우월주의와 개입주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백한 하느님의 뜻(Manifest Destiny).’ 1845년 한 기자가 “미국이 텍사스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글을 썼다. 백인이 ‘미개한’ 아시아·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는 것이 ‘백인의 책무(White Man’s Burden)’라는 주장과 비슷한 이 생각은 이후 미국 정책의 뿌리가 됐다.
캘리포니아도 미국 영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제임스 포크가 1845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그해 말 텍사스와 오리건을 미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1846년 초 국경분쟁이 있는 리오그란데강 근처에서 군사적 충돌이 생겼다. 포크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미국은 멕시코시티까지 점령했고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등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영토를 빼앗았다. 면적도 면적이지만, 텍사스의 석유와 캘리포니아의 농지 등 엄청난 자원을 확보한 것이다.
1823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먼로주의도 진화했다.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보고에서 유럽은 미 대륙의 식민지화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신세계는 유럽이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요구였다. 텍사스 독립전쟁과 미국·멕시코 전쟁, ‘명백한 하나님의 뜻’ 이후 이 주의는 ‘미 대륙의 왕’은 미국이며,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라고 부르는 미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진화했다.

끝이 없는 중남미에 대한 미국 개입 역사
미국이 서부 개척과 남북전쟁에 정신이 없으면서, 19세기 말까지는 옛 스페인 식민지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나타나지 않는다. 19세기 말 쿠바가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이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했고, 승리한 쿠바를 상대로 군 철수 조건으로 관타나모를 영구임대 받고 언제든지 군을 출동시킬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미국의 ‘전함 외교(Gunboat Diplomacy)’가 시작된 것이다.
“말은 부드럽게 하고 대신 큰 회초리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곤봉정책(Big Stick)’을 주장해온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파나마운하를 짓고 싶었지만, 콜롬비아가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파나마 지역 분리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루스벨트는 군함을 파견해 콜롬비아군의 출동을 막아 파나마가 독립하게 했다. 대신 미국은 파나마운하 건설과 영구임대권을 획득했다. 중남미에 대한 미국 개입의 역사는 끝이 없다.

“과테말라에서 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평화적 개혁은 미국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폭력혁명노선으로 입장을 바꿨다.” 의대를 졸업한 체 게바라는 1953년 선거에서 당선된 좌파 대통령이 급진적인 농지개혁 등을 추진하고 있는 과테말라에 희망에 부풀어 도착했다. 과테말라의 가장 큰 농장주인 유나이티드 프루츠는 미국 정부에 SOS를 쳤고, 미 중앙정보국(CIA)은 반군을 조직하고 쿠데타를 사주했다. ‘민주적’ 좌파정부가 미국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본 체 게바라는 눈물을 흘리며 폭력혁명을 다짐하며 멕시코로 건너가 카스트로를 만났다.

이 모두가 이 요새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떠올랐다. 그는 낡은 먼로주의와 ‘전함 외교’, 팽창주의적 영토 확대를 노골적으로 다시 추구하고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침공했고, 쿠바에 대한 모든 유류 공급을 금지하는 등 제재를 강화해 쿠바를 접수하려 하고 있다. 나아가 필요하면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미국의 영향 밑에 두기 위해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그의 ‘돈로주의’(도널드 트럼프와 먼로주의의 합성어)에는 ‘명백한 하느님의 뜻’ 유령이 보인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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