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용병과 대학 개혁[전성인의 난세직필](49)
학술 용병은 대학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증거일 뿐이다. 이것을 넘어서려면 새로운 제도하에서 대학이 꼼수보다는 정상적인 운영을 하는 것이 스스로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업적 중에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이 있다. 제도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행태를 예측하기 위해 그 사람들의 과거 행태를 분석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점을 갈파한 보석 같은 업적이다. 왜 그럴까? 과거 행태는 ‘그 당시에 존재했던 특정한 제도에 사람들이 적응한 결과’인데, 제도가 바뀌면 사람들은 ‘새로운 제도에 다시 적응해서 새로운 행태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 변화의 효과를 제대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 경험에 기반을 둔 기존 상식에 성급하게 의존해서는 안 되고, ‘새로운 제도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라는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 변화는 엉뚱한 부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왜곡하는 평가지표 관리 지상주의
그런데 지금 루카스 교수가 예언한 그 엉뚱한 부작용이 소위 ‘학술 용병’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학술 용병이란 몇몇 대학이 국제적인 대학 평가 순위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높은 일부 외국인 학자의 연구 성과를 돈을 주고 사실상 매수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실제로 이런 의혹을 받는 몇몇 대학의 경우 용병 활용 기간 동안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 편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해당 대학의 국제적 순위도 현저하게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표상의 순위 상승이 목표였다면 돈값을 톡톡히 한 것이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아지즈대학의 부패를 고발했던 사크르 알후탈리의 비유를 조금 비틀어 말하자면, 우리나라 대학의 학술 용병은 마치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팀 알나스르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호날두를 거액을 들여 영입하는 대신, 약간의 돈을 주고 알나스르 공동 소속으로 사무 처리한 뒤 프리미어리그에서 올린 득점을 자기 팀의 득점이라고 우기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나라 스포츠에도 일부 종목에서 ‘해외 용병’이 활약하고 있으나, 이들은 전적으로 해당 팀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으로 이름과 성과만 빌려주는 이번 학술 용병 사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학들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평가지표 순위 상승이 결과가 아니라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쉽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왜 그것이 대학 운영의 중요한 목표가 됐을까?’ 하는 점이다. 루카스 비판을 떠올린다면 그 이유는 ‘대학이 현행 제도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행태를 일으킨 현행 제도가 무엇인지는 찬찬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평가지표의 순위를 대학 지원의 근거로 삼는 교육부의 정책 방향 때문일 수 있다. 과거 업적이 많고 순위가 높으니 (그 경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왕창 지원해줄게, 이런 식 말이다.
이런 지원 방식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대학이 좋은 교육을 하고 연구 지원도 열심히 했다면 논문 실적도 많고 순위도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는 ‘어떤 다른 제도’하에서 발생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과거의 어떤 제도가 이처럼 바람직한 대학 운영을 초래했는지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얕은 생각에서 지원의 근거를 ‘불문곡직하고 평가지표상의 순위로 한다’고 새롭게 제도를 바꾸는 순간 대학의 행태는 ‘평가지표 관리 지상주의’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평가지표 관리 지상주의가 애초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현실을 왜곡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문재인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이 법학전문대학원 인가 열풍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그때 평가지표 중 하나가 법학전문도서관의 장서 숫자였다. 몇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가를 점수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당연히 이 평가기준에 맞춰 준비했다. 문제는 법학 서적이 매우 비싸다는 점이다. 그것을 모두 원서로 갖추는 것은 돈이 제법 많이 드는 일이다. 제대로 준비한 대학도 있겠으나 일부 대학들은 꼼수를 선택했다. 유사 전공 도서를 법학전문도서관 소장으로 돌리는 것은 애교에 속했다. 소위 해적판 전문 출판사와 계약해서 유명 법전 시리즈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복사본으로 찍어서 책장을 꽉꽉 채웠다. 심지어는 어느 나라 법전인지도 모르는 서적을 복사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종잇값만 들었다. 가히 ‘장서 용병’이라 할 만하다. 그 결과 지적재산권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해적판 장서를 가지고 리포트를 준비하는 희한한 광경이 등장했다.
한두 가지의 간단한 인센티브론 미흡
비뚤어진 목표 의식을 가지고 대학을 운영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 차원의 문제만을 일으키지 않는다. 정상적인 대학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학술 용병의 재원이 어떻게 염출됐는가를 생각해보자. 만일 학술 용병을 사용한 대학이 그 재원을 어떤 독지가의 예상치 못한 기부를 통해 조달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학술 용병을 활용하는 것은 적어도 대학의 기존 예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부분에 (상대적 박탈감은 논외로 하고)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학들이 예상치 못한 추가 재원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였을까?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절대적 위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술 용병의 재원을 마련하느라 다른 교수들에 대한 복지 혜택이나 연구 지원을 축소했을 수 있다. 이 경우 오히려 기존 교수의 연구 역량은 더 저하될 수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연구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평가지표를 이리저리 바꾸는 것은 하책이다. 예를 들어 학술 용병과 기존 교원 사이에 연구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을 바꾸면 그냥 방학 중에 하루 이틀 날 잡아서 온라인 국제회의하고 때울 수 있다. 대학의 꼼수 능력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상책은 무엇인가? 새로운 제도하에서 대학이 이리저리 궁리해봐야 꼼수보다는 정상적인 대학 운영을 하는 것이 스스로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한두 가지의 간단한 인센티브로 달성되지 않는다. 대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대학이 좋은 교육과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실질적인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어쩌면 대학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립대학 경영자에 대한 새로운 규율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학술 용병은 이미 충분히 곪아 있는 우리나라 대학 교육의 민낯을 보여주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증거일 뿐이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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