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논쟁이 보여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 ③[박이대승의 소수관점](70)

2026. 4. 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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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관계자들이 2022년 7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두 번의 칼럼에서 성매매에 접근하는 다양한 제도적 방식을 설명하고, 한국 법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제 왜 이것이 민주주의의 문제인지 살펴보자.

대의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민주주의는 선거로 통치자를 뽑는 제도가 아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따위의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민주주의’라는 말에 관해서는 최근에 나온 책 <공통된 것 없는 공동체-한국 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 관하여>를 참고해도 좋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인민 자신을 통치하는 정치 체제다. 이러한 자기 통치를 가능케 하는 매개가 바로 법 또는 법국가(Rechtsstaat)다. 인민은 법을 만드는 존재라는 점에서 통치하는 자이고, 그 법에 종속된 존재라는 점에서 통치받는 자이기도 하다.

선거는 본질에서 입법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입법자의 기본 임무는 특정한 윤리적∙이념적 지향을 정치 공동체의 공통 규칙, 즉 법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대의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정치적 대의는 단순히 시민들의 의지를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를 합리적 논변으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법과 제도로 변형하는 작업이다.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명확히 구별되며, 후자가 더 우월하다는 믿음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대의(representative)’의 의미를 단순하게 이해한 결과다. 모든 시민이 한 장소에 모여 공동체의 모든 문제를 직접 결정한다고 해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대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자. 한국사회의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는 아마도 부동산정책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논쟁을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틀로 인식하는데, 이는 민주주의를 오해한 결과다. 어떤 부동산정책을 시행할 것인지는 임대인, 임차인, 주택 소유자, 아파트 구매 희망자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문제이기에 앞서 주거권에 관한 윤리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가? 일단 주거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정의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관한 공적 논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시민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개인적 입장에 따라 특정 정책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공적 의견을 형성한다. 노동조합, 정당, 사회운동 조직 등이 이런 논의를 조직하는 매개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 시민들의 주장은 모두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는 ‘공동체의 보편적 규칙을 결정하기 위한 나의 특수한 의견’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결국 각자의 특수한 의견을 보편화하기 위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여기에는 합리성과 헤게모니의 원리가 모두 개입한다. 의회라는 장치를 통해 여러 의견 중 하나가 공통 규칙으로 채택되고, 입법자들은 그에 따라 법률을 만든다. 이제 시민들은 통치받는 자로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따라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

성매매 문제는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명확히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성매매 제도를 선택할 것인지는 헌법에서 곧바로 도출되지 않는 문제이므로, 성매매의 성격을 윤리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에는 다층적인 조건과 맥락이 개입한다. 해당 시기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성 불평등 구조, 시민 각자의 윤리적∙이념적∙정치적∙경제적 특성, 관련 집단의 이해관계 등이 극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공간에서 성매매에 관한 공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더구나 모든 시민이 자신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매매에 대한 모호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윤리적 판단 없이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성매매 비범죄화에 찬성할 수도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감정적 연대감에 기초해 성매매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성매매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항상 복잡하고 어지럽다. 그런데도 성매매에 대한 윤리적 규정을 합리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합리적 의견들이 대결하는 장으로서의 공적 논의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의 성욕 해결을 위해 성매매가 허용돼야 한다’는 시민과 ‘성매매는 그냥 더럽다고 느껴진다’는 시민이 대화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 둘 사이에 민주주의적 토론이 가능하리라고 예상하기는 힘들다.

성매매에 관한 공적 논의 공간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략 세 가지 입장이 경쟁하게 될 것이다. 성매매를 ‘특수한 규제가 필요한 위험한 노동’으로 보거나, ‘정상적 노동의 한 유형’으로 보거나, 혹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폭력’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입장들 사이의 공적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의 대의 민주주의는 이미 잘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은 것은 의회에서 이중 하나를 선택해서 체계적인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작업이다.

한국의 성매매 규제는 어떤가? 2000년과 2002년, 군산 성매매 업소 화재로 수십명의 여성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매매는 해결돼야 할 문제로 다시 가시화됐고, 그 결과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이 제정됐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성매매에 관해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렸는가?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명확히 알 수 없다.

한국의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반복되는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다수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실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친다. 그럼 정부와 의회는 눈앞의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내놓는데, 그것이 어떤 윤리적 판단과 합리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성 구매자와 성 판매자를 동등하게 처벌하는 현행 ‘성매매처벌법’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대의’란 정치인들이 대중의 분노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자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이 곧 대의 민주주의인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토론의 공간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윤리적 입장을 공동체의 규범으로 보편화하려는 시민은 어디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성매매 규제 방식만 분석해봐도 한국 민주주의의 기본 성격과 작동 방식을 명확히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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