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석채〉농협중앙회 조합원 직선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

전남일보 2026. 4. 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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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전남농협 도운영협의회장
농협중앙회 건물. 농협중앙회 제공

교육 문제와 함께 농협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그만큼 관심과 문제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최근 농협을 개혁한다며 중앙회장 선거를 조합원이 직접 뽑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지금까지 중앙회장이 조합원보다는 조합과 조합장을 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합원 직선제가 된다면 조합원만을 바라보고 중앙회를 보다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더해졌으리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차분히 따져보아야 한다. 소멸 위기에 있는 농촌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곳이 농축협이고 중앙회장은 그들을 지원할 사업 방향, 예산과 자원을 배분할 권한을 갖고 있어 결국은 농축협과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금처럼 중앙회장이 조합장 직선제로 선출되었다고 조합원을 소홀하게 대한다는 주장이 맞는가? 조합장은 자신을 뽑아준 조합원을 위해 각종 사업과 지원을 펼쳐야 다음 재선을 기대할 수 있다. 조합장은 그런 사업을 지원해 줄 것을 회장에게 요구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중앙회장도 자신을 뽑아준 그들의 니즈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조합원이 직접 중앙회장을 뽑지는 않았지만, 조합장을 통해 중앙회를 조합원 중심의 지도·지원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행 제도인 것이다. 최근 중동 사태에 따른 농업인의 고유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앙회가 300억원을 지원한 것도 동일선상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두 번째, 현행 농협법 체계와 부합하는가?

조합장은 조합의 출자자인 조합원이 선출한다. 중앙회는 조합이 출자하므로 조합의 대표인 조합장이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앙회와 출자 관계가 없는 조합원이 중앙회장을 뽑는다는 것은 현행 농협법 체계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

세 번째, 현행 농협중앙회 작동원리와 부합하는가?

중앙회의 총회는 전국 1110명의 조합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 중 300여명의 조합장이 대의원회를 조직하며, 18명의 조합장이 사외이사와 함께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앙회장만 조합원 직선제로 뽑는다면 대의원회와 이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더욱이 개정안에 따르면 조합원이 아닌 사람도 중앙회장에 출마할 수 있으니 이게 맞는 말인가?

네 번째, 조합원 직선제로 뽑힌 중앙회장은 중앙회를 잘 이끌 수 있을까?

농협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경영체다. 조합원은 각종 사업과 운영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대의원, 이사, 감사직을 수행하면서 조합의 전반을 이해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합장으로 선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는 어떠한가. 중앙회 대의원회, 이사회 등 관련 경험이 전무한 후보라도 선출될 수 있다. 경험은 없지만 전국적 인지도와 조직력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농협법 전체를 다시 써야 한다. 조합원이 조합뿐만 아니라 중앙회까지 출자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총회, 대의원회, 이사회 등을 다시 설계 한다면 일정 정도 해소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는 문제가 있다. 정말로 농업인에 대한 봉사 정신으로 무장된, 일도 잘할 것 같은 후보가 출마했다 하더라도 전국 187만명의 조합원 유권자에게 그 사실을 잘 알릴 수 있을까? 거꾸로 조합원들은 그 후보를 잘 알고 투표할 수 있을까? 결국 인지도가 높다거나 전국적 조직력이 있는 단체의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과도한 선거비용이 든다.

전국적 투표이기에 현행보다 급증하리라 예상된다. 혹자는 운영상의 문제이지 제도적 결함은 아니라고 하면서 모바일·온라인 투표제도를 도입하면 해소 가능하다고 강변한다. 여타 전국단위 선거에서도 도입하지 않고 있는 방식을 조합원 직선제에서만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초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을 감안하면 비밀투표 등의 원칙이 지켜질 것이라 어느 누가 장담할 것인가.

조합원 직선제는 그 이론적 당위성에도 불구, 현행 농협법 체계와 중앙회 작동원리 등과 배치될 뿐 아니라 경영 능력에 의심을 품을 만한 인사들의 당선 가능성을 열어 놓는 제도가 될 수 있다. 또 선거 과정에서 조합원 복지 중심의 선심성 공약 남발, 지역감정 재현 등으로 조합원 간 반목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조합원 직선제로 선출된 중앙회장이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농협법 개정안은 오히려 정반대다. 조합, 자회사 등에 대한 중앙회의 지도 감독권을 삭제하고 인사와 감사에도 정부 인사가 참여하는 등 중앙회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려 하고 있다. 어렵게 그리고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고 당선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진 상황, 개정안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취지가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처방이 과하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농업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개혁인지부터 차분히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 대상인 농협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숙의 절차와 충분한 협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석채 전남농협 도운영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