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00년 베일 벗은 사적 ‘대구 달성’…첫 정밀발굴로 축성 실체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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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50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대구 중구 달성공원 내 성곽 사적인 '대구 달성'의 실체가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는 대구 달성 성곽에 대한 최초의 학술발굴조사로, 국가유산청의 보수정비사업 지원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재단법인 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달성 남측 성벽 구간을 중심으로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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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규모·구획 축조 방식 밝혀…고대 도시 방어체계 윤곽 드러나
오는 20일 현장공개 설명회 열고 발굴 성과 첫 공개

1천50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대구 중구 달성공원 내 성곽 사적인 '대구 달성'의 실체가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번 발굴조사는 대구 달성 성곽에 대한 최초의 학술발굴조사로, 국가유산청의 보수정비사업 지원을 받아 지난해 5월부터 재단법인 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달성 남측 성벽 구간을 중심으로 진행해왔다.
문헌에 따르면 대구 달성은 261년 축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적은 축조 당시 원형을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희소성 높은 고대 성곽으로, 경주 월성과 견줄 만큼 삼국시대 대구지역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고대 신라는 이곳을 지역 통치 거점인 '치소성'으로 활용했는데, 달성고분군 역시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성벽 개·보수가 이어지며 기능을 유지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발굴 과정에서는 고대 대구지역의 정교한 토목기술이 확인됐다. 암반층을 정지한 뒤 흙과 돌을 교대로 다져 쌓고, 외벽에는 납작하게 깬 돌을 경사지게 겹겹이 쌓은 뒤 약 40㎝ 두께의 점토층으로 마감한 구조가 드러났다. 또 성벽 하부를 'L'자 형태로 절토한 뒤 경사지게 석축을 쌓아 하중을 분산시키고 밀림을 방지하는 공법이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축성 과정에서 점토 이동과 결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대량의 토낭(모래 부대)이 사용된 점도 확인됐다.
이 같은 기술은 삼국시대 저수지나 제방, 대형 고분 조성에 활용된 방식으로, 달성에서는 특히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적용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를 통해 당시 대구 지역의 토목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은 단계였음을 알 수 있다.

축성에 사용된 재료는 인근 달서천 일대 점토와 성 내부 정지 작업, 해자 조성 과정에서 나온 돌과 흙으로, 작업 구간별로 재료를 조달해 사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구획축조방식의 구체적 적용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헌에 기록된 개·보수 흔적도 실제로 확인됐다. 고려 공양왕 2년과 조선 선조 시기 달성에 석축을 추가로 쌓았다는 기록과 같이, 성벽 상부에서는 돌을 수직에 가깝게 쌓고 뒤쪽을 흙과 돌로 다진 보수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달성이 삼국시대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역 중심 성곽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시는 남측 성벽 조사에 이어 올해 북측 성벽 발굴에 착수했으며, 내년에는 성 내부 조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오는 11월에는 발굴 성과를 종합한 학술발표회를 열어 달성의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방침이다.
한편 시는 오는 20일 오후 1시30분 현장공개 설명회를 개최해 그 성과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황보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 발굴은 대구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중요한 성과"라며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달성을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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