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과 홍명보의 다른 점 [하헌기의 콘텍스트]
‘국민 눈높이’로 이해 어려운 국힘 공천…“정당의 본질 해체”
(시사저널=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장)
국민의힘 공천권은 누가 가지고 있나? 어떻게 작동하나? 합법 정당이라면 바깥에서도 그 과정이 보여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이 그러한가?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 공천권은 상자 안에 갇혀 있다. 상자를 열기 전에는 관측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그 상자를 열어볼 이도 없을 상황이다. 가히 '슈뢰딩거의 공천권'이라 할 만하다.
"공천권을 쥐는 자가 당을 지배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이다. 너무 뻔한 말인데 샤츠슈나이더까지 필요할까? 평론가들이 흔히 떠들어대는 '다음 총선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그 당을 장악한다'는 말 아닐까? 그런데 당연히 샤츠슈나이더는 저 문장을 그보다 넓은 의미로 썼다. 저 문장 바로 앞에는 "공천 절차의 성격이 곧 그 정당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적었다. 공천 과정이 투명하면 민주적인 정당이고, 밀실에서 이뤄지면 독재적인 정당이며, 지역이나 계파 보스들이 나눠 쥐면 분열적인 정당이 된다.

기준도, 일관성도 없는 제1야당의 공천
한국에서 거대 양당의 공천권은 당대표가 거머쥔다. 그래서 당대표가 그 당을 지배하는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공천에 당원 의중을 강하게 반영하는 절차와 함께 당원 주권이 작동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든다면 공천권은 사실상 당원들이 쥘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로 열어버리면 공천권은 유권자도 나눠 쥔다.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대표보다 그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더 강한 압력으로 당무 개입을 한다면 공천권은 사실상 대통령이 쥔다. 말은 당원 주권이라고 해놓고 그 당원을 대거 움직일 수 있는 유튜버 몇 명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공천권은 사실 그 유튜버한테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공천은 그 정당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정당이 민주적인지, 권위적인지, 아니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 상태인지가 공천 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난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정당의 공천 과정은 대개 두 분류였다. 귄위적이거나 분열적이거나. 멀쩡히 뽑힌 당대표가 대통령과의 공천 갈등에 '옥새 들고 나르샤' 해프닝이 벌어지는가 하면, 계파 간 나눠먹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정당 혁신을 천명하기 위해 시스템 공천이나 혁신 공천을 표방하며 당원이나 유권자 참여 비율을 높이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소위 '칼을 누가 쥐든' 간에 공천이라는 것이 모종의 성격을 갖고 '작동'은 해왔다는 말이다.
아예 작동하지 않은 상태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힘 공천 파동 말이다. 국민의힘 당대표는 장동혁이다. 그런데 장동혁이 당을 지배하는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당원이나 유권자가 쥐고 있는가? 역시 아닌 것 같다. 내전과 분당을 틀어막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계파 보스들 간의 어쩔 수 없는 분배가 이뤄지는가? 전혀. 그러면 강성 지지자들을 몰고 다니는 극우 유튜버들의 입김이 제일 세게 작동하는 상태인가?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가 성격을 알 수 없다. 기준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 상자 바깥에서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아예 공천 과정이란 게 '작동하지 않는 상태' 같다.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경선 배제)된 김한구 예비후보는 맨발에 전기톱을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컷오프가 됐는데도 예비후보로서 계속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주호영 의원은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 경기도 경선도 만만치 않다. 출마하겠다고 공천을 신청한 사람들이 뻔히 있는데, 갑자기 추가 공모를 열었다. 다른 지역들을 톺아봐도 정상적이고 일관적으로 공천 과정이 진행된 곳이 별로 안 보인다. 애초에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사령관 같은 비주얼로 공천 관리를 하던 이정현 전 공관위원장은 소송거리나 잔뜩 만들어 놓더니 자신이 직접 출마하겠다며 직을 사퇴해 버렸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중원은 텅 비었고, 대구라는 골대 앞에 11명이 우글거린다. 골키퍼도 없다. 한마디로 아노미 상태다.
이 모든 혼란의 복판에서 장동혁 대표는 갑자기 미국에 갔다. 심지어 5박 7일? 지나치게 길다. 미국 의사당 앞에서 찍어 올린 사진을 보면 영락없는 관광객이다. 사랑의 도피여행 같다. 누가 이들을 당의 지배자, 당의 책임자라 보겠나?

종래의 공천 파동과 다른 '무작동 공천'
다시 샤츠슈나이더로. 그는 "공천은 정당의 모든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상 정책이나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 정당에 대한 대표적 정의 중 하나가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란 것이다. 이리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정당이 그저 권력을 거머쥐고 누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란 말이더냐'고 오해하곤 한다. 그런 뜻이 아니다. 저 말을 풀어쓰면 '정당 정치란 정부의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적 시도'쯤 되겠다. 결국 정부의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로 '체제'가 결정되지 않던가? 군주에게 있으면 왕정이고, 군사 쿠데타로 가지게 되면 군사정부다.
오직 정당만이 집권을 획책할 수 있기에 현대 민주주의 정부는 필연적으로 정당정부다. 정당은 곧 현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기제다. 그리고 그 기제는 결국 '공천'으로 구성된다. 집권하기 위해선 선거에서 이길 후보를 내어야 하고, 그 과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 바로 그렇기에 '공천이 정당의 모든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심지어 정책이나 이념보다도 더. 정책이나 이념은 학자들이 벼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이 아무리 학자와 전문가들의 수준 높은 연구를 탑재하더라도, 정작 선거에서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을 단순화하고 정치 참여로 동원하는 기제로서 작동하지 않으면 그 조직은 그냥 싱크탱크다. 즉, 공천권은 정당의 정체성과 생존을 결정하는 생명선이다.
지금 한국 축구가 엉망이지만 존재는 하는 이유는, 선수 선발권은 홍명보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공천 과정은 종래의 '공천 파동'이 아니다. 아예 정당 내의 정치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장동혁이 미국에 가느라 내팽개쳐버린 것은 단순히 '당대표로서의 책임의식'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 정당의 생명선이다. 국민의힘은 내홍에 빠진 게 아니다. 아예 정당의 본질 자체를 해체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욕하는 역사적 상황에 비유해 봐도 황당하다. 명청 교체기의 조선엔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지켜야 할 이념이라도 있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망국의 시기에 매관매직을 남발했지만 그 돈이 누구에게 들어가는지는 분명했다. 나라의 절반을 책임져야 할 제1야당의 몰락에 지금 저 정도 이유라도 보이는가? 나는 보이지 않는다. 주체도 책임도 없는 제각각의 무책임과 방관에 의해 사후경직과 부패가 진행 중이다. 그 정치적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책임질 이도 없으니 피해는 국민만 보게 될 것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속 면한 전한길…법원 “증거인멸·도주우려 없다” - 시사저널
- 코로나19 신종 변이 바이러스, 다시 유행 조짐 - 시사저널
- 월드컵이 코앞인데…왜 여전히 홍명보 감독에는 ‘물음표’가 붙을까 - 시사저널
- “16세 여학생 만날 분”…조건만남 미끼로 내건 10대들의 공갈 수법 - 시사저널
- 직무 정지에 고발까지…녹취 후폭풍, ‘사면초가’ 박상용 - 시사저널
- “마라탕 배탈 조심”…프랜차이즈 3곳서 식중독균 검출 - 시사저널
- 피멍 든 얼굴로 눈물 흘린 故김창민 감독…불구속 가해자는 활보 - 시사저널
- 제균치료 했는데 왜 위암? 흡연·음주·비만이 좌우했다 - 시사저널
- 우울 막는 생활습관, 성별·연령 따라 달라진다 [박민선의 건강톡톡] - 시사저널
- 야식·커피 즐겼다면 주의…가슴 쓰림 부르는 ‘위산 역류’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