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 전가… '대리점 위조 계약서' 나오자 KT가 벌인 일 [추적+]

김정덕 기자 2026. 4. 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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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KT 이상한 인터넷 계약서 2편
소비자가 문제 제기할 땐 뒷짐
계약 해지엔 위약금 청구 소송
불법행위 발견되자 대리점 탓
이익만 챙기고 모든 책임 전가
공허한 재발 방지 다짐 지킬까

# 국내 이동통신 3사 중 한곳인 KT. 지난해 봄, KT는 한 소비자의 민원에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인터넷 계약서에 문제가 있으니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번번이 외면했다. 수개월을 참다못한 소비자가 관련 계약을 해지하자 KT는 되레 '위약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 하지만 관련 소송은 KT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KT 대리점이 작성한 계약서에서 '사인 위조' 등의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KT는 돌연 위약금 소송을 취하하고, 모든 책임을 대리점에 떠넘겼다. 권리만 취하고 책임은 대리점에 모두 넘긴 셈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더스쿠프가 지난 3월 보도한 '사인한 적 없는데 왜 내 사인이… KT 이상한 인터넷 계약서(통권 694호)'의 후속을 준비했다.

대리점이 연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KT는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더스쿠프는 지난 3월 '사인한 적 없는데 왜 내 사인이… KT 이상한 인터넷 계약서'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내 최대(인터넷 가입자 기준) 통신사 KT에 얽힌 황당한 사건을 소개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당시 내용을 복기해보자.

■ 계약서 위조사건의 복기 = 지난해 4월 서울에서 레지던스 호텔을 위탁 운영하는 A씨는 재무제표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결산'을 발견했다. 인터넷을 이전 설치한 후 요금이 훨씬 많이 나온 거였다.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계약서를 찾아봤지만 없었다. 그제야 A씨는 계약 갱신 기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재계약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A씨는 "재계약을 했으면 통신사나 대리점으로부터 일정액의 '지원금'을 받았을 텐데, 지원금을 받은 내역이 없었다"면서 "재계약이 없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레지던스 호텔은 객실마다 인터넷을 개설하기 때문에 요금도, 지원금 규모도 큰 편이다.

A씨는 곧바로 KT에 자신의 사업장이 재계약은커녕 계약서를 받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다음 정확한 확인을 위해 KT 측에 계약서 사본과 함께 사실관계 조사를 요청했다. 그런데 KT 측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계약서 사본이 있지만, 줄 수는 없다"고 했고, "계약을 맺은 건 대리점이니 대리점과 얘기하라"는 말만 늘어놨다. 어쩔 수 없이 A씨가 인터넷 계약을 해지하자 KT는 되레 수백만원에 달하는 위약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까지도 황당한데 더 큰 문제는 소송 후 나타났다. 소송 과정에서 KT 대리점은 문제의 '계약서' 한부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여기엔 A씨의 사인이 아닌 엉뚱한 사인이 돼 있었다. A씨의 주장처럼 사문서 위조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계약이 이뤄졌다는 방증이었다.

KT가 대리점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 피해구제에 적극적이지도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숱한 문제점을 확인한 A씨는 법원에 계약서 사인의 필적 감정까지 의뢰하면서 적극적으로 소송에 임했다.

■ 위약금 소송 취하했지만 = 여기까지가 지난 기사에서 우리가 지적했던 부분이다. 그로부터 한달여가 흐른 지금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사가 나간 뒤 KT는 '위약금 소송'을 취하했다(4월 1일). KT가 법원에 제출한 소송 취하서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을 조금 다듬었다.

[사진|연합뉴스]
'○○정보통신(KT 대리점) 측에 따르면 ○○정보통신의 B영업부장이 피고(A씨) 회사의 C관리부장과 전화통화로 계약갱신을 협의한 후, 해당 계약서(문제의 위조 계약서)를 작성했다. 구두 협의가 피고의 진정한 의사표시인지, C관리부장에게 계약갱신 체결 권한이 있는지, 갱신약정 이후 할인액을 제공한 게 부당이득반환청구 대상인지 등을 검토해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이 원고와의 위탁대리점 계약상의 준수 의무를 위반한 법적 또는 도의적 책임감으로 피고의 통신 서비스 요금을 전부 부담하기로 했기에 소를 취하한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소송 취하서의 핵심 내용은 두가지다. 첫째, KT는 자체 조사를 통해 '대리점이 전화통화로 계약갱신 협의를 했고, 이를 근거로 삼아 자체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걸 확인했다. 다시 말해 대리점의 불법행위(전기통신사업법 위반)를 인지했다는 거다. 둘째, 대리점의 행위가 정당했는지 등을 짚어볼 수는 있지만, 대리점 측이 모든 책임을 지고 위약금을 물기로 했으니 더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소송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 KT 이상한 회피① = 자, 그럼 KT가 소송을 취하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KT의 대응 과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애초 A씨가 민원을 제기했을 때 KT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리점의 불법행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계약서를 요청하고, 사실조사를 부탁했지만, KT는 수개월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방관하던 KT가 움직인 건 A씨가 계약을 해지한 후였다. KT는 기다렸다는 듯 '위약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소송 절차가 KT가 원하는 그림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리점이 작성한 위조 계약서가 등장하는 등 불리한 증거들이 법원에 제출됐다. 그러자 KT는 마치 선심 쓰듯 소송을 취하했다. KT로선 소비자가 제기한 민원을 허투루 다뤘다가 일을 키운 셈이다.

사실 KT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키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0년대 세차례에 걸쳐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도, 2024년 KT 측이 조직적으로 고객들 컴퓨터를 해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2025년 KT가 해킹을 당해 무단 소액결제 사고가 연이어 터졌을 때도 그랬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단 사안을 축소하기 바빴다. 그러다 일이 커진 후에야 수습에 나섰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 KT 이상한 회피② = 따져볼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KT 대리점의 '불법행위'를 이렇게 눈감아도 될 일인지 의문이다. KT는 수많은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있다.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도, 손해를 보기도 한다. 당연히 대리점을 관리ㆍ감독할 필요가 있는데 관련 규정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공하는 '통신업종 표준대리점거래계약서' 제9조는 "공급업자(통신사)는 대리점에 이(위탁) 계약에 따른 대리점의 영업업무 관련 자료를 구체적으로 범위를 특정해 요구할 수 있고, 대리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참고: 규정에서 보듯 대리점 관리ㆍ감독은 사실 통신사의 권리다. 대리점 관리를 안 하는 건 권리를 포기한 셈이다.]

[사진|뉴시스]
그런데도 KT는 대리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한 적이 거의 없다. 2019년 KT 대리점에서 벌인 사기영업 사건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KT 대리점들은 "쓰던 휴대전화를 반납하면 공짜로 새 휴대전화를 준다"고 여성 소비자를 꼬드긴 후 갖은 불법적 수법을 동원해 요금을 뜯어냈다.

대리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여성들로부터 반납받은 휴대전화 속에서 각종 개인정보를 빼내 유출하는 2차 범죄도 저질렀다. 당시 KT는 "일부 대리점의 일탈일 뿐 본사와는 무관하다"며 발을 뺐지만 상황을 알고도 매출 극대화를 위해 묵인한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피하진 못했다.

이번 계약서 위조 사건도 마찬가지다. KT 대리점이 사인을 위조해 계약서를 체결한 게 사실로 드러났지만, KT는 '위약금 청구 소송'을 취하한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객의 접점이 대리점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대리점에 떠넘기고, 재발 방지책조차 내놓지 않았다.

후속 조치도 엉망이다. KT는 A씨에게 적절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당연히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해당 대리점의 불ㆍ편법 영업 정황을 파악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 대리점은 과연 KT로부터 어떤 조치를 받을까. 아울러 문제가 있는 대리점이 전국 1795곳 중 과연 이곳뿐일까. KT는 이번 '이상한 계약서' 사건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만 남겼다. 이대로 괜찮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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