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추억의 바퀴 운동화’ 휠리스 창시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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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바퀴 달린 운동화 '휠리스(Heelys)'의 발명가 로저 애덤스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휠리스의 성공으로 애덤스는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애덤스는 휠리스가 다른 스포츠보다 안전하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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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애덤스는 지난달 24일 미국 네바다주 자택에서 췌장암 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롤러장 운영자의 아들로 태어난 애덤스는 원래 임상 심리학자로 활동했으나, 직업적 회의감과 이혼 등 개인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98년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는 롤러블레이드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그는 친구의 차고에서 운동화 뒷굽을 잘라내고 스케이트보드용 베어링을 박아 넣는 실험 끝에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휠리스’는 2000년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4년 70만 켤레 수준이던 판매량은 2008년 760만 켤레로 급증했으며, 팝스타 어셔(Usher)가 뮤직비디오에 신고 나오며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휠리스의 성공으로 애덤스는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2006년 기업 공개(IPO) 당시 회사의 시장 가치는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영광 뒤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아동의 골절 및 머리 부상 위험이 제기되자 일부 국가와 학교, 쇼핑몰 등에서 휠리스 착용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애덤스는 휠리스가 다른 스포츠보다 안전하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2009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다양한 착용형 이동 장치 특허를 출원하며 발명가로서의 삶을 지속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휠리스는 아이들이 이동하는 방식을 재정의했다”며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은밀한 활주의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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