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항공사 SAF 항로 이탈… 넷제로 전략 ‘후퇴’ 괜찮나?
장기계약·투자 등 생존법 모색
항공업계가 넷제로(Net Zero)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가능항공유(SAF) 도입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왔으나 최근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 야심찬 SAF 도입이 현실 앞에서 스텝이 꼬이는 중이다.
지난주 미국 3대 항공사 중 하나로 꼽히는 델타항공은 자사 웹페이지에서 SAF 사용 목표를 삭제한 것을 두고 뒷말도 무성하다. 사실상 넷제로 전략을 후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SAF의 공급 부족과 높은 가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델타항공은 자사의 지속가능성 비전을 제시하는 웹페이지에서 2030년까지 항공기 연료의 10%를 SAF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삭제했다.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목표(goal)'에서 '지향(aspiration)'으로 단어를 변경했다.

델타항공 관계자는 "델타항공은 여전히 SAF를 항공업계 탈탄소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로 보고 있으나 SAF의 느린 발전이 업계의 기후 목표 달성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델타항공은 SAF 사용량을 최근 2년간 6배 이상 늘려왔지만 지난해 기준 전체 항공유에서 SAF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했다. 사용량을 크게 늘리고도 목표치인 1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델타항공이 SAF 전략을 철회한 배경이 됐다.
SAF 전략을 폐기한 항공사는 델타항공 이전에도 있었다. 오클랜드에 본사를 둔 에어뉴질랜드는 지난 2024년 탄소 감축 목표를 돌연 철회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약 29% 감축하는 목표를 폐기하고 SBTi(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한 것이다.
에어뉴질랜드 관계자는 "SAF는 구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2050년 넷제로 달성이라는 장기 목표는 유지하되 단기 목표는 재설정한다"고 밝혔다. SAF의 공급량과 가격을 고려할 때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30%가량 줄인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교통을 연구하는 폴 칼리스터 박사는 "에어뉴질랜드의 기후 목표는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고 달성하기 어려운 수치였다"며 "SAF 생산과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보고서가 계속 나오고 있고 항공사들의 비용 부담도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공업계에서 과감한 배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SAF 생산 포기"
사우스웨스트항공은 2022년부터 공들여온 SAF 프로젝트 'SAFFiRE'를 지난해 매각했다. SAFFiRE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직접 SAF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다.
3년여간 공들인 프로젝트를 매각한 배경에는 SAF 생산의 현실적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원료 수급 문제다. SAF는 폐식용유나 동식물성 기름을 원료로 하는데 이 원료를 확보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전 세계적으로 수거 가능한 폐자원의 양이 SAF나 바이오디젤 등 여러 산업군의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EU 최대 항공사 협회 A4E(Airlines for Europe)는 2030년까지 시장에 나올 수 있는 SAF의 양은 필요한 양의 0.7%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생산에 막대한 에너지가 요구되는 것도 문제다. SAF는 고도의 화학 공정을 필요로 하며 생산 과정에 대규모의 열과 수소, 전기가 투입된다. 이 과정에 화석연료를 사용할 경우 친환경 연료라는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 기반의 전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비용 부담이 막대하다.
행정적 부담도 있다. 지속가능성 인증과 규제가 매우 복잡하다. SAF는 원료 채취부터 운송, 정제 공정, 연소 등의 과정에서 탄소 감축 효과를 측정해 친환경 여부를 판단한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 원료가 된 폐식용유가 어디서 나왔는지, 다른 기름과 섞이지 않았는지 등 출처도 증명해야 한다. 유럽연합(EU)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까다로운 기준까지 통과해야 한다.

유럽 항공사들 "SAF 너무 비싸다"
문제는 소비자가 돼도 끝나지 않는다. 일반 항공유 대비 2~5배 비싼 가격 때문이다. SAF의 생산·인증 과정이 복잡한 만큼 막대한 비용이 가격에 반영되며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 시장에서 높은 수준의 가격이 형성된다.
이에 유럽 항공사들이 반기를 들었다. 지난 3월 17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럽 항공사들이 SAF 관련 규제에 반발하면서 오는 2030년부터 SAF 의무화 비율을 높이는 EU의 규정을 연기하거나 폐지하도록 요구했다.
현재 EU 규정에 따르면 항공 연료 공급량 가운데 2%를 SAF로 충당해야 한다. 2030년에는 이 비중이 10%로 확대되며 2050년에는 70%로 대폭 늘어난다. 이 중 일부는 전기 기반 지속가능항공유(eSAF)로 충당해야 한다.
유럽 항공사들은 이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높은 비용 때문에 부담이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가 시행되면 목표를 맞추지 못해 막대한 벌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항공권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고객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AF 사용 확대를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는 항공사들도 많다. 이들은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에어프랑스-KLM은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와 2035년까지 10년간 최대 150만톤의 SAF를 공급받기로 했다. 항공업계에서 최대 수준의 장기 계약이다. 비싸더라도 과징금을 내기보다는 미리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판단에 의해서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장기 구매 계약과 지분 투자를 병행한다. 항공사 최초로 펀드를 만들어 제트블루, 에어캐나다 등과 함께 SAF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단순 구매보다 공격적인 움직임이다. 생산회사에 투자해 미래에 생산될 SAF를 미리 확보하는 전략이다.
SAF 이후를 내다보는 기업도 있다. eSAF 의무 비중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아메리칸항공은 eSAF 생산업체인 인피니움(Infinium)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맺었다. 신기술에 미리 베팅해 시장 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50 넷제로 두고 항공업계 아우성
SAF 의무 비중은 국가별로 다르다. 한국은 2027년부터 전체 연료 중 1%를 SAF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2030년에는 3~5%, 2035년에는 7~10%로 점차 확대된다.
EU는 세계에서 SAF 의무 규정을 가장 강력하게 실시한다. 2030년 6%, 2035년 20%를 목표로 한다. 2050년에는 70%를 SAF로 충당해야 하며 이 가운데 35%는 eSAF로 채워야 한다. 미국은 2050년에 SAF 100% 사용을 목표로 내걸었다. 그 전에는 의무화가 아닌 세제 혜택 등으로 참여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ICAO의 2050년 넷제로 목표가 유효한 이상 전 세계 항공사들이 단일대오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SAF 사용 확대는 항공사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될 전망이라 어떻게든 유연한 전략이 가동될 것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SAF 공급량에 명확한 한계가 있는 만큼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에너지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SAF 생태계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전략이 요구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