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00년만에 베일 벗는 대구 달성 남측 성벽…20일 현장공개

이강일 2026. 4. 1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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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는 정밀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달성(達城)'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현장공개 설명회를 오는 20일 연다고 17일 밝혔다.

대구시 관계자는 "발굴 조사로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성과를 얻었다"며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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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 토성이 아니라 토석혼축·석축 기법 혼용으로 확인"
달성 전경 [대구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대구=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대구시는 정밀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달성(達城)'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현장공개 설명회를 오는 20일 연다고 17일 밝혔다.

발굴조사는 달성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정식 조사로 국가유산청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지난해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달성은 첨해이사금 15년(261년)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축조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희소성이 높은 고대 성곽으로 경주 월성과 비교되는 대구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달성은 고대 신라가 현재의 대구 일대를 다스리기 위해 축성했고, 달성고분군도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성벽은 개·보수를 거치며 기능을 이어 왔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남측 성벽 규모는 하부 너비 35m, 외벽 높이 17m, 내벽 높이 9m 안팎으로 대규모 방어 성벽의 모습을 보여준다. 축성 시기는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된 토기 편과 성곽 축성기법 등으로 볼 때 5세기 중엽 전후로 추정된다.

그동안 달성은 토성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 결과 토석혼축(土石混築·흙과 돌을 용도와 위치에 맞춰 따로 혹은 섞어서 견고성을 높임)과 석축 기법을 적절하게 혼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축성 과정에 대규모 인력이 동원됐고, 작업 그룹별로 분담이 이뤄진 것을 보여주는 구획축조방식(區劃築造方式)이 확인됐다.

사용된 축성재는 근처 달서천 저지대 점토와 달성 내부 평탄 작업 및 성 바깥 해자(垓字) 조성 과정에서 나온 돌과 흙으로, 구획 작업자별로 재료를 조달해 성을 쌓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대구시는 달성 남성벽과 북성벽에 대한 발굴 성과를 토대로 오는 11월께 달성에 대한 학술발표회를 열어 달성의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의미를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 계획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발굴 조사로 달성의 축성 시기와 구조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성과를 얻었다"며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대구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활용하겠다"고 말했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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