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출신 홍현욱 장사 별세

이동수 2026. 4. 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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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 씨름판 최강자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삼척 출신 홍현욱 전 한국씨름연맹 경기본부장이 지난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1974년 씨름 명문 대구 영신고로 전학한 뒤 본격적으로 샅바를 잡았고, 불과 1년 만인 1975년 고교 2학년 때 제29회 씨름선수권대회에서 당대 최강 김성률 장사를 꺾으며 이름을 알렸다.

1989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씨름연맹 심판위원장과 경기본부장 등을 지내며 씨름 행정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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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 씨름판 최강자로 군림
◇사진=박승한 씨름연구소 소장 제공(사진은 생전 고인이 씨름연구소에 기증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 씨름판 최강자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삼척 출신 홍현욱 전 한국씨름연맹 경기본부장이 지난 1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9세.

삼척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유도를 했으나 부친을 여읜 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씨름에 입문했다. 1974년 씨름 명문 대구 영신고로 전학한 뒤 본격적으로 샅바를 잡았고, 불과 1년 만인 1975년 고교 2학년 때 제29회 씨름선수권대회에서 당대 최강 김성률 장사를 꺾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고인은 이준희 현 대한씨름협회장과 함께 씨름판을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활약했다. 1982년 씨름 프로화 이전까지 전국선수권대회 2회, 대통령기 4회, 회장기 2회, KBS배 3회 등 전국 단위 대회에서 모두 11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민속씨름 출범 이후에도 백두장사급 정상에 네 차례 오르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특히 5회부터 7회 대회까지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씨름 중흥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혔다.

1989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씨름연맹 심판위원장과 경기본부장 등을 지내며 씨름 행정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말년에는 생활고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부산 비이케이더블유 좋은삼선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 장지는 창원시 시립상복공원이다.

 

이동수기자 messi@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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