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은 손절'…인간관계도 투자가 된 시대

2026. 4.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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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직을 만들었다.

사회학자 이승연은 신간 '손절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손익 계산으로 보는 젊은 세대의 관계 맺기를 신자유주의와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의 산물로 분석한다.

"존재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는"(웬디 브라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투자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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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이승연 '손절사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투자의 대상이다. 경청과 공감은 외주화되고, 손절한 관계의 빈틈을 인공지능(AI)이 메우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직을 만들었다. 고립을 국가가 관리할 위기로 보고, 의료 현장에서 약 대신 지역 모임 활동을 연결하는 사회적 처방이 제도화됐다.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직을 신설했다. 2023년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을 지낸 비베크 머시는 외로움을 "미국의 전염병이자 공중보건 위기"라고 선언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024년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0%가 '정부가 외로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눈여겨볼 건 외로움의 주요 주체가 청춘이란 점이다. 2024년 미국 야후 여론조사에서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는 19~29세였고, 2018년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20대가 전 세대 통틀어 가장 높은 비중으로 "항상 외롭거나 자주 외롭다"고 답했다(한화손해보험 '2539 외로움 및 관계맺기 인식 조사보고서').

"코로나19에 버금가는 외로움 대유행을 경험하는 중"인 2030세대는 한편에서 자발적으로 관계 단절을 선택하기도 한다. 투자 손실이 더 커지기 전, 손해를 보고도 주식을 매도하는 경제 용어 '손절'은 이제 인간관계를 설명할 때도 자주 쓰인다.

사회학자 이승연은 신간 '손절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손익 계산으로 보는 젊은 세대의 관계 맺기를 신자유주의와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의 산물로 분석한다.

"존재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는"(웬디 브라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투자의 대상이다. 평가를 통해 나의 감정 에너지를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다.

건강과 행복, 치유를 중요하게 여기고, 일상의 많은 부분에 심리학, 정신의학 해석을 대입하는 치료요법 문화가 유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사회에서 노동자는 몰입, 감정 같은 심리적 특성까지 통제돼야 할 상품, 이른바 '인적 자본'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감정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정신 건강과 치유, 행복에 집착하게 됐다는 말이다. "자존감을 보호하고 심적 고통과 갈등을 겪지 않는 것이 도덕적 가치가 된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을 듣는 건 나를 해치는 행위이자 불필요한 감정 투자가 된다. 손절 외에도 아무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잠수' 등 인간관계의 돌연한 단절은 오늘날 다양한 문화권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손절사회·이승연 지음·어크로스 발행·384쪽·2만1,000원

인간 성향을 분류하는 지표로 MBTI(마이어스-브릭 성격 유형검사)가 유행하고, HSP(감각 초민감자) 같은 용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도 '최적화된 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몇 줄의 프로필을 통해 자신과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감정 투자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한편에서 자기 자신도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과 일정 거리를 둔다. 저자는 20대 여성의 우울증에 관한 학위 논문을 쓰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20대 상당수가 처음 보는 상담사에게 털어놓는 고민을 주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공짜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며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고,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지 않기 위해 상품화된 경청(상담 전문가)을 찾았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일상을 전하고, 고민 예능이 유행하는 건 경청과 공감이 외주화된 시대상을 반영한다.

저자는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관계 경험을 통한 자아의 성숙이고,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 말에 귀 기울이는 단순한 행위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거대한 연대의 시작에는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듣겠다는 한 사람의 결심이 있었다.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변화는 당신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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