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로 떠나는성지순례] 단장의 세월, 삶이 깃든 성소가 품다


◇거친 돌에 희망 담아 지은 김포성당
그 돌을 보고 싶었다.
이번에 갈 곳인 구 김포성당 관련 자료와 사진을 찾아봤다. 컴퓨터 화면에는 돌로 지은 간결한 서양식 성당이 나타났다. 1956년 신자들이 직접 돌을 나르고 쌓아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성당을 세웠을까.

성당 건립 당시 신자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농사일을 끝낸 저녁에서야 공사가 시작됐다. 남성 신도들은 산으로 가 돌을 캐오고 여성 신도들은 땅을 일구거나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왔다. 인근 군부대에서는 건설 장비를 지원했다. 그들이 이토록 어려운 환경에서도 손을 멈추지 않은 건 아마도 종교적인 믿음과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절실한 마음 때문이지 않았을까?

성당으로 가려면 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성당과 벚꽃은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잠깐 풍경을 감상하고 올라가다 뒤로 돌아 김포를 둘러봤다.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서 속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눈을 가리는 높은 건물이 없던 시절에는 사방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구 김포성당의 가치는 단지 건축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느 절이나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 성당을 다닌 사람들에게 이곳은 기억이자 추억이며 삶의 한 부분이었다. 아침에 밥을 먹듯 성당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성당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맺었을 것이다. 힘들 때는 든든하게 기댈 언덕이었고 기쁠 때는 함께 기쁨을 나눌 너른 마당이었다. 성당 건물에는 그 많은 사람들의 삶들로 가득 채워졌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성당이 살아 있는 듯 따뜻하게 다가왔다.



◇원종과 인헌왕후 잠든 장릉으로
'해질 무렵에 성당에 온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뒤로 하고 김포 장릉으로 떠났다. 장릉은 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어머니인 인헌왕후가 잠든 곳이다. 대중에게 이곳은 왕릉 자체보다 몇 년 전 불거진 '왕릉뷰' 논란으로 널리 알려졌다. 장릉 인근에 짓던 아파트가 장릉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자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에서는 사전 심의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건설사는 공사 중지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해 공사가 마무리됐다.
평일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장릉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심에서 가까워 부담 없이 나들이하기에 좋은 것 같았다. 매표소를 지나 먼저 장릉역사문화관에 들렸다. 왕릉마다 마련된 역사문화관에는 해당 왕릉의 역사와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어 왕릉을 살펴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이 역사관은 장릉을 방문하는 이들이 궁금해 하는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는 과정을 알기 쉽게 전시했다.
원종은 선조의 아들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8세 때 정원군에 봉해졌다. 그는 왕위에 오른 광해군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았다. 결국 총명하던 셋째 아들 능창군이 역모 사건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 전에 자신의 집터가 왕의 기운이 서렸다는 이유로 집을 빼앗겼다. 연이은 불행에 충격을 받은 정원군은 1619년 세상을 떠났고 남양주에 묻혔다.

◇아름답고 편안한 숲길을 걸으며
원종의 능으로 가는 숲길은 아름답고 편안한 산책로 같다. 인공적으로 만든 길이지만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길 좌우로 목련을 비롯한 봄꽃이 활짝 피었고 여기저기서 연둣빛 어린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길을 걷는 사람들 발걸음은 가벼웠고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예쁜 꽃을 볼 때면 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남겼다.
길을 걷다 만난 재실은 나무에 둘러싸여 조선 양반들이 경치좋은 곳에 지은 집인 별서처럼 보였다. 재실은 왕릉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고 제기를 관리하는 곳이다. 재실 입구에는 커다란 목련이 눈부시게 피어 기분 좋게 재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널찍한 재실은 예부터 지금까지 정성껏 관리한 듯 깨끗하고 깔끔했다.

잠시 연못에 넋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원종의 무덤을 만나러 올라갔다. 홍살문을 지나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정자각이 나왔다. 정자각을 돌자 언덕 위에 놓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이 한눈에 보였다.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이 원종의 무덤, 오른쪽이 인헌왕후의 무덤이었다. 역모에 휘말려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식을 지켜봐야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훗날 또 다른 아들이 왕이 됐어도 찢어졌던 마음은 어찌할 수 없지 않았을까?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국제정세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대신 명분에 치우쳐 병자호란을 막지 못했고 청나라에 볼모로 갔다 돌아온 세자를 독살했다는 의심마저 받았다. 그런데 인조의 무덤인 파주 장릉이 이곳 원종의 무덤인 장릉에 인사라도 하듯 남북으로 놓였다는 걸 떠올리면, 인조가 부모를 위하는 깊은 효심을 보는 듯 싶었다. 죽어서 지금까지 인조의 효도를 받는 원종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하다 장릉을 떠났다. 이때에도 장릉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닿는 휴식과 역사의 공간
오전에 둘러본 구 김포성당은 아름다우며 사람 냄새가 물씬 났다. 오후에 찾은 장릉은 권위적이라기보다 편안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웠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곳 모두 김포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김포에는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갈 수 있는, 매력적인 영감과 휴식과 역사의 공간이 있다.
박찬희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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