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차량정비 노동자 혈액암 11명, 원인은 벤젠

서울교통공사 차량기지 혈액암 문제는 더 이상 의혹 제기 단계가 아니다. 2025년 6월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차량 직군 전·현직 노동자 가운데 혈액암 발병자는 모두 11명으로 확인됐다. 기존에 알려진 6명에 더해 5명이 추가로 확인된 수치다. 지난해 기계직 2명까지 포함하면 확인된 발병자는 13명이나 된다. 병명은 백혈병과 림프종(호지킨·비호지킨)이다. 발생 시기는 2007년부터 2023년까지 17년에 걸쳐 있고, 근무했던 사업소도 지축·군자·창동·고덕·신정·천왕 등 여러 차량기지에 걸쳐 있다. 한 사업소에서 드물게 생긴 일이 아니라 차량 분야 곳곳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169개 화학제품에 '벤젠'이 있었다
혈액암 환자가 한두 명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늘어나자 2024년 12월부터 약 6개월간 외부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수행기관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산학협력단이었다. 차량 직군 재직자·퇴직자·전직자 4천438명을 대상으로 작업장 유해 요인과 혈액암 발병의 관련성을 살폈다. 왜 현장에서 환자가 계속 발생하는지, 어떤 물질이 위험 요인인지 확인하기 위한 조사였다.
연구진은 차량 정비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 169개를 수거해 성분을 분석했고, 그중 16개 품목에서 0.01퍼센트 이상의 벤젠이 나왔다. 해당 제품은 곧바로 수거·폐기됐다. 벤젠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분류한 1군 발암물질로, 백혈병·다발성골수종·비호지킨 림프종과의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이 제품들은 수십년 동안 도장재·세척제·탈지제라는 이름으로 정비 현장에 놓여 있었다. 매일 그 제품을 다루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들이마시는 공기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조차 몰랐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비치돼 있었더라도 실제로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측정기에 잡히지 않는 위험
연구용역이 지금 시점에 측정한 작업환경의 벤젠 농도는 고용노동부 허용기준을 밑돌았다. 도장작업의 경우 벤젠 농도는 0.00058피피엠(ppm)으로 허용농도 0.5피피엠에 크게 못 미쳤다. 일반인과 비교한 혈액암 발병률도 차량본부 직무자가 13퍼센트가량 높게 나왔지만, 표본이 크지 않아 보고서는 "통계적으로 확실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수치만 보면 차량본부 직무자의 혈액암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결과를 곧바로 '위험 없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혈액암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높지 않은 이유는 조사 대상 인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인 혈액암은 표본 규모에 따라 통계적 유의성이 쉽게 흔들린다.
업무상 질병은 당사자가 어떤 공정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어떤 물질에 반복 노출됐는지, 발병 시기와 경과가 어떠한지를 함께 봐야 한다. 실제로 공사에서 혈액암을 이유로 산재를 신청한 6명 중 4명은 이미 승인을 받았다.
더 중요한 사실도 있다. 연구진은 작업자를 노출 시기별로 나눠 분석했는데, 2011년 이전 중정비 작업을 했던 '확실 벤젠 노출군'이 그 이후 작업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혈액암 발병률을 보였다. 이 '확실 노출군'이라는 분류는 공사가 스스로 정리한 구분이다. 공사가 공식 보고서에 '2011년 이전 중정비 작업자들은 벤젠에 확실히 노출됐다'고 적어 놓은 셈이다. 이는 앞으로 유사한 진단을 받은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할 때 과거 노출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감시는 예방이 아니다
연구용역은 벤젠 노출 수준별로 작업자를 네 단계로 나눠 감시체계를 권고했다. 가장 높은 노출군만 600명이 넘고, 전체 대상자는 약 2천900명에 이른다.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감시는 예방이 아니다. 감시체계는 이미 병이 생긴 사람을 빨리 찾아내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애초에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세척장비를 교체하고, 환기 설비를 설치하고, 디젤 기관차를 전기로 바꾸는 일이 먼저다. 노동자의 건강은 감시 대상이 아니라 개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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