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의 구매전쟁] ② 대두와 옥수수, 두 개의 패권
브라질의 부상ㆍ중국의 비축… 흔들리는 미국 곡물 메이저

2004년 시카고에 부임했을 때, 미국 중서부를 달리는 곡물 트럭과 열차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아이오와ㆍ일리노이ㆍ인디애나의 끝없는 대두와 옥수수밭, 그 수확물이 미시시피강 수로를 따라 뉴올리언스 항으로 흘러내려가는 장면은 미국 농업 패권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때만 해도 세계 대두 수출의 절반이 미국에서 나왔다. 지금은 다르다. 2024년 기준 브라질의 대두 수출량은 미국의 두배에 달한다. 패권이 이동했다.
▲브라질, 20년 만의 대역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 세하도(Cerrado) 고원은 산성 토양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대두의 원산지는 온대이기 때문에 브라질 농업연구공사(Embrapa)가 1970년대부터 석회 처리와 열대 적응 품종 개량에 착수해 이 땅을 옥토로 바꾸는 데 20년이 걸렸다. 지금 보는 숫자들은 그 결과다.브라질은 대두뿐 아니라 옥수수에서도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브라질의 두 번째 작물, 이른바 ‘Safrinha(2기작)옥수수’는 대두 수확 직후 같은 밭에서 재배한다. 2012년 미국 콘 벨트(Corn Belt)가 가뭄으로 말라미국산 옥수수가 역대 최고가($8.49/bu)를 기록했을 때, 브라질 농가들은 Safrinha 면적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브라질 옥수수 수출은 2010년대 초 연 1,000~1,500만 톤 수준에서 2023년 5,000만 톤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이 전환에 속도를 붙인건지경학(geoeconomics)이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 1라운드 때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브라질산 대두가 그 공백을 메웠다. 관세 충격으로 미국산 대두 가격이 급락하고 수요는 브라질로 향했다.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은 2017년 약 3,300만 톤에서 2018년 약 1,700만 톤으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브라질이 그 공백을 채웠고, 그 구조는 이후에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재연하면서같은 구도가 다시 작동하고 있다. 브라질은 이 구조적 전환의 최대 수혜자다. 대두 한 품목에서 브라질이 연간 1억 톤 수준인 중국 수입 수요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시대가 됐다.
▲중국, 전략적 매집을 통한 비축
곡물 시장에서 중국을 단순한 '수요자'로 보면 시장이 잘 읽히지 않는다. 중국은 구조적 비축자다. 중국 정부는 식량 안보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설정하고, 작황이 나쁜 해에도 좋은 해에도 일정 물량을 꾸준히 사들인다.
이 비축 전략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우선 대규모 매집 국면에서 중국은 가격 상승의 트리거가 된다. 2020~2021년 곡물 슈퍼사이클이 대표적이다. 당시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물류가 마비된 상황에서 중국이 대규모 옥수수·대두 매입에 나섰다. 여기에 ASF(아프리카돼지열병)로 폐사했던 돼지 개체 수를 복구하는 재입식 수요가 맞물렸다. 2018~2019년 ASF로 중국 돼지 개체 수의 약 40%가 폐사했고, 재입식 과정에서 대두박(사료 단백질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동시에 라니냐로 남미 작황이 부진했고, 달러 약세로 원자재(commodity) 투자 자금이 유입됐다. 수요ㆍ공급ㆍ금융이 동시에 맞물린 슈퍼사이클이었고, 중국의 매집이 그 방아쇠를 당겼다.
반면 방출은 보이지 않는다. 비축분을 국내에 풀어 수입을 줄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제 시장에는 '중국이 안 산다'는 형태로만 나타난다. 계절적 비수기인지, 재고 방출인지 구별이 어렵다.확인은 항상 사후에 온다. 매집은 어느 정도 읽히지만 방출은 안 보인다는 이 비대칭성이 구매 포지션 관리의 핵심 난제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중국은 비축 규모를 더 늘린다. 식량을 경제 무기로 사용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비축을 구조화하고 있다. USDA 추정 기준 중국의 옥수수 재고는 전 세계 총 재고의 60%이상을 차지한다. 이 규모 자체가 시장 가격에 구조적 변수로 작용한다.


▲ ABCD, 그리고 새로운 균열
곡물 시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ABCD'라는 약자를 안다.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ADM) △벙기(Bunge) △카길(Cargill)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전 세계 곡물 무역의 70~80%를 장악해온 4대 메이저다. 이들은 수확지에서 항구까지 사일로ㆍ철도ㆍ선박을 수직 통합한 인프라 위에서 마진을 가져간다.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물량이 움직이는 한 이들은 수익을 낸다.
그런데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현지 대형 농가 연합(SLC Agrícola, Amaggi 등)이 직접 수출 인프라를 구축하며 ABCD의 마진을 잠식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COFCO(중량그룹)가 아시아 최대 곡물 트레이더로 성장하며 ABCD와 직접 경쟁 구도에 들어섰다. 2014년 COFCO는 Nidera와 Noble Agri를 인수하며 글로벌 곡물 공급망에 직접 발을 들였다. 전통적인 ABCD 중심의 예측 가능한 구조가 다극화되고 있다.
한국 수입 기업에게 이 변화는 직접적인 과제다. 기존에는 ABCD와의 계약이 일상적이었고 공급 안정의 보증 수표였다. 이제는 브라질 현지 공급사, 아르헨티나 수출 규제, 중국 수요 타이밍, 미국 에탄올 정책 변수를 동시에 읽어야 한다. 공급망 지도가 복잡해진 만큼, MI(Market Intelligence)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바이오 경제, 곡물 수요의 새 지층
2004년 시카고에서목격한 것 중 하나는 에탄올 공장의 폭발적 증가였다. 당시 미국 옥수수의 10% 남짓이 에탄올로 전환되던 시대였다. 지금은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37~40%가 에탄올 원료로 소비된다. 연간 1억 4000만 톤이다. 이것이 옥수수의 '에너지 수요 하한선'을 만들었다. 유가가 급락해도 RFS(재생연료기준) 의무 혼합량이 있는 한 에탄올 수요는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기에 차세대 수요가 층층이 쌓이고 있다. SAF(지속가능 항공유) 생산을 위한 대두유·옥수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SAF 생산에 갤런당 최대 1.7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며 대두유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발효 바이오 산업도 빠뜨릴 수 없다. 라이신·구연산·젖산 등 발효 제품의 탄소원으로 옥수수 전분ㆍ포도당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대두와 옥수수는 이제 식량ㆍ사료ㆍ에너지ㆍ바이오소재를 동시에 공급하는 ‘플랫폼 작물’이 됐다.
이 구조가 한국 구매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곡물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유가가 내려도 곡물이 그만큼 따라 내려오지 않는 시대다. 비용 절감의 여지가 좁아진 만큼, 구매 타이밍과 헤징 구조 설계가 실질적인 원가 경쟁력을 가른다.
다음 회 예고 ③ 곡물 下: 원당, 달콤한 전쟁 — 인도의 수출 통제, 브라질의 에탄올-설탕 스위칭 전략, 바이오 발효 산업의 핵심 탄소원으로서 원당의 전략적 위상 변화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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