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의장·CEO 분리…주요 위원회에 독립이사 배치 농협 2차 개혁 임박…핵심은 '인적 분할'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발표한 농협 개혁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중앙회 감사 기능을 독립법인으로 분리하는 것, 그리고 중앙회장 선거를 조합원 직선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1월 말 출범한 농림축산식품부 농협개혁추진단이 두 달여 만에 내놓은 대책인데, 이 가운데 직선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논의의 배경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제공=뉴스1
그동안 농협중앙회장 선출 방식은 수차례 바뀌어 왔다. 1961년 농협 출범 이후 30년 가까이는 정부가 회장을 임명하는 관선제였다. 1988년 농협법 개정으로 조합장 직선제가 도입됐고 2009년 대의원 간선제로 바뀌었다가 2021년 다시 조합장 직선제로 복원됐다. 지금 논의되는 조합원 직선제는 조합원 187만명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투표인단이 현재의 1700배 규모로 확대된다.
직선제 찬성파의 근거는 현행 간선제가 조합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농협개혁추진단의 공동단장 원승연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행 간선제의 가장 큰 문제는 조합장이 조합원을 대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한다는 데 있다"며 "조합원이 중앙회장을 직접 뽑는 것은 협동조합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반대 논거는 중앙회장 권한 집중에 대한 우려다. 187만 조합원의 직접 선출로 민주적 정당성이 강화되면 오히려 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선거 과정에서 지역 갈등이 부각되거나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될 거라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 대표 선출 방식보다 중요한 건
프랑스의 협동조합 크레디 아그리콜(CA)의 이사회 의장은 직선제로 선출되지 않는다. 39개 지역은행 대표들이 전국농업신용연합회에서 의장을 먼저 선출하면 CA의 이사회가 같은 인물을 의장으로 선임한다. 올해 1월 취임한 에릭 비알(Éric Vial) 의장은 사부아 지역은행 의장 출신이다.
CA는 의장과 CEO를 따로 두어 의장은 이사회를 주재하고 CEO는 인사와 예산 집행 등 경영 전반을 담당한다. CA의 이사회 21명 중 6명은 그룹 외부 출신의 독립이사다. 감사위원회, 리스크위원회, 보상위원회의 위원장은 전원 독립이사가 맡는다. 경영진 보수, 리스크 관리, 재무 감사를 외부 인사가 통제하는 구조다. 39개 지역은행 대표는 전국농업신용연합회에 매달 모여 지주사 경영의 방향성을 심의한다. 지역이 중앙을 상시 견제하는 채널이 제도화된 셈이다.
농협은 사정이 다르다. 중앙회 정관에 따라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농협법상 각종 사업을 집행할 권한은 상호금융대표이사와 전무이사 등이 나눠 갖지만 이들을 추천하고 선출하는 통로는 모두 회장이 주재하는 이사회로 수렴된다. CA에서 이사회 의장, CEO, 지역은행으로 분산된 견제 경로가 농협에서는 회장 한명에게 모이는 셈이다.
농협개혁추진단에 참여 중인 하승수 변호사는 "현재 농협의 이사회는 조합장 이사든 사외이사든 발언도 거의 하지 않는, 거수기에 가깝다"며 "쉽게 말해 이사회에 나와서 급여나 수당만 받아 챙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이사회는 사실상 존재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사회 실질화 방안으로 중앙회장과 이사회 의장 분리, 이사의 충실의무 법제화, 이사회 회의록 공개를 제시했다. 조합원의 정보공개 청구권과 비공개 시 이의신청 절차를 법률에 근거 조항으로 두고 세부 절차는 중앙회 정관에 위임하는 방식도 함께 제안했다.
■ "상장은 대안 아냐" 회의론
크레디 아그리콜 주식회사 전경 / 제공=크레디 아그리콜 홈페이지
'농협 상장론'은 중앙회가 독점한 지배구조에 외부 주주와 시장 공시라는 감시 경로를 새로 만들자는 취지에서 제기돼 왔다. CA가 2001년 지주회사 상장을 통해 이런 경로를 확보했다는 사례도 근거로 거론된다.
상장을 통해 농협의 개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문제의 근원이 중앙회의 내부통제 부재와 이사회 형식화, 정보공개 부족에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현재 수익성이 양호해 상장을 통해 자본을 끌어올 필요성이 크지 않다. 상장을 하더라도 중앙회가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이상 인사와 경영에 대한 영향력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농협경제지주는 농민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수매하고 농자재를 공급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만일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 이익 극대화 요구가 협동조합 고유의 기능과 충돌할 수 있다. CA도 경제사업 영역은 지역조합 구조 안에 남겨뒀다.
중앙회 자체를 상장하는 시나리오는 더 먼 이야기다. 현행법상 중앙회는 협동조합 법인이므로 상장을 하려면 주식회사로의 법적 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농협의 설립 근거 자체를 바꾸는 문제다.
■ 농협 '2차 개혁' 임박…핵심은 '인적 분할'
농협개혁추진단은 앞으로 인적 분할을 핵심 의제로 다룰 계획이다. 인적 분할이란 한 법인의 사업과 자산을 둘 이상의 법인으로 나누는 것을 뜻한다. 중앙회가 100% 보유한 양대 지주(금융지주, 경제지주)의 지분을 복수의 주체로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추진단 내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5개 광역권·3개 특수권) 전략에 맞춰 8개 시도연합회로 지분을 나누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각 연합회장이 중앙회 이사를 맡고, 중앙회장은 이들의 호선으로 뽑는 구조다. 간접선거로 선출된 중앙회장 1인이 금융·경제 양대 지주를 좌우하는 현행 구조를, 지역 기반 연합회의 집단 견제 구조로 전환하는 개편이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난 70년간 농협중앙회에 축적된 자본을 어떤 기준으로 8개 연합회에 배분할 것인지, 금융과 경제사업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연합회의 구성과 운영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쟁점이 산적해 있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9일부터 이틀 동안 실시한 설문에서 전국 조합장의 96% 이상이 정부 개혁안에 반대한 상황. 지분·권한 재배분이라는 한층 근본적인 변화를 담은 2차 개혁안은 반발 강도가 더 클 수 있다.
CA 역시 지난 2001년 지주회사 상장을 추진할 때 유사한 반발을 겪었다. 48개 지역은행 수장들은 "외부 자본을 받아들이면 수익성과 주가에 쫓긴 경영이 농민 지원 사업을 밀어낼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협동조합 정체성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당시 CEO와 회장이 2년간 당사자들과 150여 차례 미팅을 진행한 끝에, 지역은행이 지주회사 지분 과반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상장안이 통과됐다.
크레디 아그리콜과 농협은 출발점이 같았지만, 한 조직은 권력 분산의 방법을 설계해 왔고 다른 조직은 권한 집중의 구조를 유지해 왔다. CA가 25년 전 매듭지은 논쟁을 농협은 이제 막 시작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