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래서 아름답다 [.txt]

한겨레 2026. 4. 17.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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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많은 것이 사라지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벚꽃잎처럼 흩어지는 경험을 한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책 '사라지는 것들'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그러니 영원이라는 신화가 없더라도, 너에게 정성껏 가 닿으려는 지금의 그 진심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서로의 구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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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민의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사라지는 것들 l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글·그림, 김윤진 옮김, 비룡소(2021)

살다 보면 많은 것이 사라지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벚꽃잎처럼 흩어지는 경험을 한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그림책 ‘사라지는 것들’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작가는 반투명 종이를 그림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우리 주변의 사라지는 것들을 재치 있게 구현해 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가 날아가고, 낙엽이 지고, 음악 소리가 흩어진다. 아기의 젖니도, 어른의 머리도 빠진다. 우울과 두려움도 결국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책장을 넘기면 찌푸렸던 얼굴이 펴지고, 두려움에 크게 떴던 눈이 편안히 감긴다. 머리카락이 콧수염이 되고, 찻잔의 김이 컵케이크 위의 크림이 되는 마법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일시성’이라는 철학 용어가 아름답게 변주되는 책이다. 작가는 가벼운 종이 한장의 장치를 통해,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결국 바스러지고 흩어진다는 사실을 무겁지 않게 전한다. 이 세상 많은 것들은 시간의 제약 속에 있고, 그건 자연스러운 순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거듭 소멸을 말하다가 마지막에 ‘사랑’이라는 영원을 슬쩍 끼워 넣는다. 하지만 엄마와 아이가 꼭 껴안은 모습이 “영원히”라는 글자와 함께 클로즈업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현실을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사랑만이 예외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사랑 또한 바래고 변하며 때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만큼은 절대적인 것이란 말도 신화일지 모른다. 부모라는 역할을 맡게 된 사람들도 자주 길을 잃으며 사라져 가는 존재일 뿐이니까.

우리에게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은 영원한 사랑의 다짐보다는, 사라지는 존재라 해도 지금 너와 눈을 맞추고 함께 흘러갈 거라는 유한함의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한강 작가가 그리는 인간의 형상처럼 “부스러질 혀와 입술”, “부스러질 맑은 눈”을 가진 우리에게, 영원이란 건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옷 같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에 기대 보는 것은 어떨까. 그는 인간의 삶은 일시적이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이 절대적이라고 했다. 즉 일시성은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영원이라는 허구에 매달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일시성이 프로이트에게로 가면 꽃은 곧 시든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아름다워지고, 하이데거에게로 가면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 인간들을 참된 삶으로 이끈다. 유디트 샬란스키의 책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에는 카스피해 호랑이나 시인 사포의 아름다운 연가들처럼 이 세계에서 우리가 영영 잃어버린 것들이 차례로 나오는데, 읽을수록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어떤 존재가 남긴 ‘있었음’의 감각이 우리 삶의 지층을 이루는 것이니까.

책 표지에는 민들레 갓털을 부는 소녀가 있다. 갓털은 바람을 타고 흩어져 시야에서 곧 사라지겠지만, 그것이 곧 소멸은 아니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영원히 곁에 머무는 바위가 아니라, 서로의 생을 향해 부드럽게 날아가는 홀씨 같은 것.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에 닿아 새로 시작하는 힘. 그러니 영원이라는 신화가 없더라도, 너에게 정성껏 가 닿으려는 지금의 그 진심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서로의 구원이 될 것이다.

이진민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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