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로 전쟁, 세계 패권을 바꾼다"...70년 전 수에즈운하도 그랬다 [세계는 왜?]

손효숙 2026. 4. 1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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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위기로 세계 패권 英에서 美로
호르무즈 봉쇄되면  美패권도 위태
세계 석유 흐름 유지는 패권국 핵심 요건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나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컨테이너선들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사실상 봉쇄가 5주 이상 계속되면서 70년 전 이집트 '수에즈운하 위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두 곳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군사 요충지일 뿐 아니라 세계 에너지 수송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통행로입니다. 같은 이유로 세계 열강에 의한 패권 다툼의 전장이 됐죠.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기시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영국의 역사학 교수인 헤럴드 제임스는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올린 기고문에서 과거 영국과 프랑스가 수에즈운하 통제권을 위해 이집트를 공격한 사실을 언급하고 "미국이 중동에서 유사한 교착 상태에 직면했다"고 평가했습니다.


70년 전 '수에즈 위기'의 전말

1956년 11월 5일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에즈운하 옆 유류 저장 탱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위키피디아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 여왕을 끝으로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로마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1922년 출범한 이집트 왕국은 사실상 영국의 통제를 받는 꼭두각시 정권이었죠. 무능하고 부패한 왕조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영국이 손을 뗀 팔레스타인 땅을 놓고 이스라엘과 아랍 연맹 간 1차 중동전쟁(이스라엘은 건국전쟁이라 부릅니다)이 발발합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집트에서는 장교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이 주축이 된 반란이 일어났죠. 반란군은 1953년 왕정 폐지와 함께 공화국을 선포합니다.

정권을 장악한 나세르 대통령은 1956년 7월 탈식민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방책으로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권을 가진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결정합니다. 수에즈운하의 통제권과 요금 결정권을 다시 가져오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그러자 같은 해 10월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비밀 협약(세브르 의정서)을 맺고 이집트 나세르 정권을 전복하고 수에즈운하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킵니다. 협약에 따라 이스라엘이 먼저 이집트의 타란해협과 아카바만 봉쇄를 깨기 위해 시나이반도를 공격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공습하며 가담하는 시나리오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제임스 교수에 따르면 당시 영국·프랑스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 작전의 대담함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 확신했다고 해요. 하지만 미 아이젠하워 정부는 두 나라가 상의 없이 이집트를 공격한 데 격분하며 군사 행동 중단을 요구했죠.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반대와 소련의 압박으로 체면만 구기며 철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들이 유엔의 제재를 받고 물러나면서 그간 누리던 지역 패권도 함께 증발해 버렸습니다.


서유럽 열강이 추락한 '결정적 순간'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가 2021년 5월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수에즈운하는 6개월 동안 폐쇄됐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이 미국 없이 단독 군사행동으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어요.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따른 분쟁 해결 과정에서 쇠퇴하던 영국, 프랑스 같은 서유럽 열강의 지배력은 떠오르던 강대국 미국으로 옮겨갑니다. 제국의 강함을 증명하려 했던 전쟁이 오히려 패권의 균열을 드러낸 결정적 순간이 된 것이죠. '수에즈 순간(Suez moment)'이라는 국제정치학 용어는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제국주의를 세계의 주요 도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관심이 수에즈 작전에 쏠리자 소련은 그해 11월 4일 헝가리를 침공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어요. 결국 서유럽 열강은 세계 패권국 지위를 미국과 소련에 물려주게 됐고, 양강 구도의 냉전 체제는 한동안 강화됐죠.

수에즈 위기의 여파는 경제와 금융에도 미쳤습니다. 영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했고 외환 시장 개방과 환율 통제 제한을 도입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감시 아래 경제 자유화를 강요받게 된 것이죠.

나세르 대통령은 권력 강화와 함께 아랍 세계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애초 수에즈운하는 영국과 프랑스 자본이 대주주인 수에즈운하 회사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전쟁 이후 운하 운영권은 완전히 이집트로 넘어갑니다. 이집트는 제3세계와 비동맹 운동 핵심 국가 및 탈식민주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호르무즈, 전쟁 전후 완전히 다를 것"

수에즈 운하와 호르무즈해협.

다시 호르무즈해협으로 돌아가볼까요. 미국이 금방 무너질 것이라고 봤던 이란은 오히려 호르무즈를 지나는 배에 통행세를 물리거나 안전 기금을 받겠다고 선포한 상태입니다. 통행료를 '달러' 대신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대체하겠다는 구상이 나오고 있어요.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했던 이집트의 얼개가 그대로 재현되는 셈입니다. 다만 수에즈운하는 인공적으로 개설한 운하이고, 한 국가 내에 온전히 들어가 있는 시설입니다. 국제법상 수에즈운하 건은 합법적으로 처리되었던 반면 호르무즈해협의 통행세 부과 같은 조치는 국제법상 승인이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호르무즈와 수에즈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호르무즈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전쟁이 종식돼도 호르무즈해협이 다시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3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의 통항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프랑스의 수에즈운하 작전이 단기간에 끝났지만 두 나라를 굴욕에 빠뜨리고 결국 그들의 국제적 야망을 무너뜨린 것처럼요. 제임스 교수는 "1956년 이후의 영국과 프랑스처럼, 걸프 지역 패권을 재확인하려던 미국도 스스로 초래한 위기를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호르무즈 순간'...미국 패권이 흔들린다

8일 미국 뉴욕에서 이란과의 전쟁에 반대하고 레바논 분쟁 종식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지금 세계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향해 전쟁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대비한 계획이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에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해협 봉쇄를 풀지 못하면 미국도 냉전 해체 후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차지했던 세계 패권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세계 석유 흐름을 장악하는 것은 글로벌 패권국의 요건인데, 미국이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세계 석유 교역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페트로달러'(원유 거래 시 달러로 결제) 시스템과 이를 바탕으로 누리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스스로 훼손한 셈이니까요.

한 곳의 통행료 체계가 당장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진 않겠지만 가속화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포르투갈의 전 유럽 사무국장 브루노 마사에스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패권 요건의 핵심인 석유 흐름 봉쇄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전능한 미국'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번 전쟁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보다 더 심각한 군사적 패배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동맹국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도 패권국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지점이에요. 협상이 미국에 유리하게 마무리된다고 해도 동맹 관계의 손상은 쉽게 회복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스티븐 워트하임 선임연구원은 NYT에 "지역 내 미국 군사력 주둔에 대한 전략적 근거가 큰 타격을 입었다"며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미국의 통치 질 저하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전 세계 국가들의 의문을 증폭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거꾸로 된 수에즈 위기'? 승자는 '중국'

게티이미지뱅크

70년 전 수에즈 위기의 극적 반전을 이룬 주인공은 미국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미국 행정부가 영국과 프랑스를 압박해 물러나게 하면서 세계 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국가가 된 것이죠. 이번 수혜자는 중국입니다. NYT 등 미 언론은 이란을 설득해 휴전 테이블로 끌어낸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란이 신뢰하는 중재자로 중국이 급부상하며 차기 패권국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죠. 유달승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지리적 요충지를 둘러싼 분쟁은 단순한 분쟁으로 끝나지 않고 패권의 이동을 불러왔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종결을 이끈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습니다.

훗날 역사학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끈 이 전쟁을 '호르무즈 순간'이라고 명명하게 될까요. 최근 라잔 메논 뉴욕대 명예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 국가를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떠드는 동안, 중국은 평화 중재자이자 안정의 대리인처럼 비쳤다"며 "중국은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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