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무당 ‘조말례’에 속아 150억을… 재력가 부부에 무슨 일이
학부모 모임서 소개받은 무당에
가스라이팅 당해 회사 자금 횡령
강요 못이겨 음란 영상까지 찍어
부부는 이혼, 사기꾼은 구속 기소

유명 생활가전 업체 창업주의 아들 A씨는 2019년 3월 회사 대표직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런데 1년이 조금 지나 업체 대표가 돌연 창업주인 아버지로 다시 교체됐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2025년 12월, A씨는 회삿돈 65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에서 A씨 횡령 혐의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남부지검은 검토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A씨가 회사에서 빼돌린 돈 대부분이 여성 장모(50)씨에게 흘러 들어간 것. 장씨는 A씨에게 받은 돈으로 33억원 상당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를 사들였다. 그런데 A씨는 “장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A씨가 마치 장씨를 보호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상함을 느낀 검찰은 수사에 나섰다. 계좌 추적과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장씨가 A씨를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해 횡령을 유도했다는 의심을 검찰은 갖게 됐다. 결국 검찰은 보완 수사 끝에 지난 2월 장씨 일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공갈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본지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장씨는 2017년 서울의 한 유명 사립초등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A씨의 처 B씨를 처음 만났다. B씨가 생활가전 업체 창업주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장씨는 B씨에게 부부 모임을 제안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듬해 A·B씨가 아들의 건강 문제를 털어놓자, 장씨는 “고위층 사주를 봐주는 유명한 무속인이 있다”며 ‘조말례’란 인물을 소개했다. 조말례가 단번에 A씨 부부 아들의 열경련 증상을 짚어내자 이후 A씨 부부는 장씨를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무속인 조말례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장씨와 그의 전 남편 심모(48)씨가 조말례를 사칭한 것. 장씨와 심씨는 A씨 부부와 교류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말례 행세를 한 것이었다. A씨 부부가 조말례란 가상의 인물에게 속아 넘어간 것은 문자 메시지로만 소통했기 때문이다. 장씨와 심씨가 조말례인 양 문자 메시지로 A씨 부부에게 상담을 해준 것이다.
장씨와 심씨는 이런 방식으로 A씨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회삿돈을 횡령하도록 종용해 65억원을 가로챘다. 장씨와 심씨는 B씨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아파트 지분과 현금 등 87억원을 빼앗았다. 장씨 일당이 2년여간 A씨 부부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150억원이 넘는다. 장씨 일당은 B씨에게 “더러운 피를 없애야 한다”며 음란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강요하고, 이후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영상을 학교와 가족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일들로 가정불화를 겪던 A씨와 B씨는 2020년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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