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한글?… 아이들은 한눈에 알아본다네

최근 서울 종로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기자간담회장. 처음 보도자료에 실린 사진을 보고 ‘당연히’ 한문인 줄 알았다. 오는 19일 법회를 갖고 일반에 공개되는 전북 남원 실상사의 ‘휴휴당’ 주련(柱聯)이다. 주련은 옛 건물 기둥에 좋은 글귀를 적어 걸어 놓는 것을 말한다. 사찰에서는 경전 구절이나 옛 선사의 선시(禪詩)를 걸곤 한다. 주로 한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한글이란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뜯어보니 어렴풋이 글자가 보인다.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임을’ ‘미안해 미안해’ ‘이제 알았네’ ‘그대가 나임을’ ‘고마워 고마워’라고 적혀 있다.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이 지은 시를 서예가 김종원씨가 쓰고, 김각한 각자장(刻字匠)이 새긴 작품. ‘문화 실험’이다.

이번 주련 작업은 실상사가 2020년부터 진행하는 ‘문자 반야(般若·근원적 지혜)’ 프로젝트의 하나. 실상사 내 현판과 주련을 대상으로 전통은 지키되 현대의 문화적 성과를 반영해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는 도법 스님과 디자이너 안상수,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 흥선 스님(전 불교중앙박물관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숙고와 숱한 회의를 거쳐 새로 지은 건물부터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고려 시대 건물 터에 새로 지은 복합 문화 공간엔 서양화가 오수환씨가 한글로 쓴 ‘선재집’ 현판을 걸었고, 천왕문 양쪽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라는 안상수씨의 한글 주련을 걸었다.

2013년 완공돼 현판과 주련 없이 운영해온 템플스테이 강당에는 작년에 한자와 한글을 섞어 김종원씨의 글씨로 ‘休휴堂’이란 현판을 걸었다. 휴휴당 주련의 내용은 3년의 숙고 끝에 결정됐다. ‘나’와 ‘너’가 따로 없고 모든 존재가 연결돼 있다는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을 담고 있다는 뜻에서다. ‘그대가 나’라는 내용을 반영하듯 주련 속 글자들은 서로 마주보듯 대칭형이다.
하지만 한눈에 판독하기에는 여전히 ‘어렵다’는 반응이 있다. 안상수씨는 “이지 컴, 이지 고(easy come, easy go)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쉽게 읽혀도 재미가 없지 않느냐. 보는 이와 주련이 약간의 긴장감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천진난만한 눈에는 이 복잡한 글들이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실상사 관계자는 “어른들은 낯설어 하는데 아이들은 ‘거울이네?’라며 대번에 알아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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