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100주년, 만해와 설악] 6. 설악의 시인들 (하)
삼연집 완성, 정조·후세 문인 귀감
유년시절 식민지·해방·전쟁 겪어
“문학은 시대 초월해야” 창작 몰두
한국전쟁 종군기자 ‘상실감’ 각인
문학작품 넘어 전후시대 감정 대변
설악의 언어 ‘고독·영원’ 노래하다
시대 상처, 서정적 몸부림으로 승화
설악산은 오래전부터 시인을 불러들였다. 천 길 암벽과 뼈를 에는 계곡물, 구름을 삼키는 봉우리와 단풍으로 불타는 골짜기. 그 풍경은 인간의 내면을 흔들어 깨우는 거대한 언어였다. 조선의 문인이 그 품에 깃들었고, 현대의 시인이 그 기슭에서 우주를 발견했으며, 산골의 소년은 그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세상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불꽃 같은 시를 남겼다. 설악이 낳고 설악이 키운 세 시인 김창흡, 이성선, 박인환의 이야기다.
삼연 김창흡, 영시암에 몸을 묻다

설악산 깊은 곳, 백담사 인근에는 영시암(永矢庵)이라는 이름의 암자가 있었다. ‘영원히 맹세한다’는 뜻의 그 이름처럼, 한 문인이 속세와의 결별을 스스로에게 맹세하듯 그곳에 머물렀다. 삼연(三淵) 김창흡(1653~1722)이었다. 김창흡은 노론의 영수 김수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형 김창집·김창협과 함께 ‘삼형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순탄한 길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1689년 기사환국의 피바람 속에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賜死)되던 날, 그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다. 벼슬도, 도성도, 사대부의 삶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졌다.
그는 짐을 꾸렸다. 향한 곳은 조정이 아니라 산이었다. 금강산을 거닐고 삼부연 폭포 소리에 귀를 씻으며, 마침내 그는 설악의 품에 자리를 잡았다. 설악은 그에게 혹독했고 동시에 관대했다. 겨울이면 칼바람이 암자의 문틈을 파고들었지만, 봄이면 진달래가 울산바위 자락을 붉게 물들였고, 가을이면 천불동 계곡이 단풍으로 불타올랐다. 김창흡은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시로 옮겼다.
설악의 별빛 아래 우주를 노래한 이성선

나뭇잎 하나가 어깨에 툭 내려앉는 순간, 그는 말했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고, 그래서 너무 깊은 말. 이성선(1941~2001)의 시는 늘 그랬다. 작은 것 안에서 광활함을 보았고, 고요한 것 안에서 영원을 들었다.
1941년 고성 성대리에서 태어난 시인은 처음부터 설악과 함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해 바다를 벗 삼아 5㎞를 걸어 학교를 다녔고, 창밖에는 언제나 설악산과 울산바위가 서 있었다.
그러나 유년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모친 아래 홀로 자란 소년에게, 식민지·해방·전쟁이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유년 위로 차례로 덮쳐왔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그 시절, 소년의 곁에 끝까지 남은 것은 설악과 바다였다.
민중시와 참여시의 열기가 문단을 뒤흔들던 시절에도 이성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학은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구도자처럼 시를 썼다. 어쩌면 분단이라는 상처 속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 한 서정적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도피가 아니었다. 폭력적인 세계와 맞서 싸우는 대신, 우주적 질서와 무위(無爲)의 세계를 지키는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의 시적 상상력은 언제나 자연에서 출발해 우주로 향했다. 인간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더 큰 우주로. 그 여정은 마지막 시집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지막 시집의 서문은 마치 자신의 앞날을 예감한 듯 읽힌다. “문을 열면 언제나 거기 달이 떠 있다. 그에게 차 한잔 대접하듯 이 시집을 나의 평생친구 달에게 바친다.” 그리고 2001년, 향년 60세로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시인은 떠났지만 717편의 시는 지금도 설악의 산자락과 동해의 물결 사이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난 한 소년도 처음엔 조용했다. 그러나 그 강물은 끝내 산을 벗어나 세상으로 흘러갔다. 박인환, 강원도 산골이 낳은 가장 도시적인 시인이었다. 경기중학교 진학을 위해 상경한 그는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보다 문학에 마음을 빼앗겼고, 결국 서울로 돌아와 종로에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舍)’를 열었다. 그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해방 직후 혼돈의 서울에서 문학과 예술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드는 살롱이었고, 젊은 박인환의 문학적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은 그의 시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종군기자로 전선을 누비며 목격한 죽음과 폐허는 그의 내면에 깊은 허무와 상실의 감각을 새겨놓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명동의 술집과 다방을 전전하며 시를 썼다. ‘목마와 숙녀’는 읽는 이를 단숨에 전후의 우수 속으로 끌어당겼고, ‘세월이 가면’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누군가의 입술에서 나직이 흘러나온다. 그의 시는 문학 작품이기 이전에 시대의 감정 그 자체였다. 1956년 3월, 박인환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 살이었다. 너무 이른 죽음이었고, 너무 갑작스러운 소멸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짧은 생은, 처음부터 불꽃으로 태어난 존재의 필연적인 결말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시 속에는 인제 산골의 서늘한 강바람과 명동 뒷골목의 짙은 술 냄새가 함께 배어 있었다.
설악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산이 품어낸 세 시인의 목소리는 지금도 살아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꽃처럼, 계곡을 가득 채우는 물소리처럼, 미시령 고갯길을 넘어오는 바람처럼 시대도 다르고 삶도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설악이 가르쳐 준 언어로 시를 썼다. 그 언어의 이름은 자연이었고, 고독이었으며, 영원이었다.
#김창흡 #박인환 #이성선 #영시암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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