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R 시작 직전 ‘허리 통증’ 기권, 박상현이 보여준 ‘베테랑의 품격’

김도헌 기자 2026. 4. 1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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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사진제공 | KPGA
[춘천=스포츠동아 김도헌 기자] 16일 강원 춘천시 라비에벨 골프앤리조트 올드코스(파72)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2026시즌 개막전 ‘제21회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총상금 10억 원) 1라운드.

오후 1시 1번 홀에서 출발하는 박상현은 티오프 시간이 임박했지만,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이틀 전 찾아온 허리 통증 탓이었다. 동반자인 함정우와 김홍택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티샷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는 티잉 그라운드 뒤편에서 ‘허리 운동’을 하다 시간이 다 돼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극심한 통증에도 힘겹게 플레이를 이어가던 마지막 18번 홀. 티샷 미스로 볼이 카트 도로 위에 떨어진 박상현은 구제를 받아 러프에 볼을 옮긴 뒤 세컨드 아이언 샷을 하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어이쿠”라며 짧고 깊은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옆에 있던 갤러리가 안쓰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직접 지켜본 1번 홀과 18번 홀 상황도 그렇지만, TV 중계 화면에 중간중간 잡힌 그의 모습에서도 통증이 ‘보일’ 정도였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경기를 중도에 포기할 만했지만 그는 완주했다. 파4 18번 홀에서 그린을 놓치고도 파를 적어낸 그는 결국 1오버파 공동 72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경기 뒤 만난 그의 얼굴에는 힘겨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박상현은 “대회를 앞두고 한동안 허리가 뻐근하다는 느낌도 들고 안 좋았는데, 이틀 전(14일)에 갑자기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디스크 협착증이 있어 통증을 종종 느끼곤 하는데, 이번엔 정말 많이 아팠다. 뭐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라며 “프로암 때도 공을 치지 못하고 동반자 분들께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그냥 걷기만 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치료도 받았다. 이틀 동안 클럽은 한 번도 잡지 못하고, 1번 홀에 나섰다. ‘괜찮겠다’ 싶었는데 티박스에 서고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원래 허리가 안 좋아도 항상 걷다보면 좀 풀리곤 하는데, 오늘은 진통제를 때려먹어도 안 되더라.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요즘 대부분의 선수들은 플레이 도중 쉽게 경기를 포기하고 기권을 한다. 몸이 아파서일수도 있지만, 코스가 어려워 스코어가 좋지 않을 때 ‘몸 핑계’를 대며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1983년 4월생으로 불혹을 훌쩍 넘긴 43세 베테랑에게 ‘기권’은 정말 하기 싫은 듯 했다. 그는 실제로 거의 기권을 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3번 홀을 마쳤을 때, 사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좀 걷다 보면 풀리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냥 했는데, 오늘은 아예 답이 없었다”며 쓴 웃음을 짓던 그는 “몸이 아파도, 스코어가 좋지 않아도, 선수라면 몸이 허락하는 한에서 경기를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오히려 질문을 던진 뒤 이렇게 말했다.

“스폰서나, 팬들 입장에서 오늘 같은 상황이라면, 내게 기권하는 게 낫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파서 포기하다보면, 그게 습관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골프가 좋아서 하고 있는데,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 후배들에게 ‘버틸 때까지 버티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어 그냥 끝까지 뛴다. 때론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해서든 스코어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드라이브가 안 되면 때론 숏 게임으로 만회할 수도 있다. 난 그저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이다.”

2라운드를 앞둔 속내도 가감없이 풀어냈다.

“그동안 아프면서도 좋은 성적을 냈었고, 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늘도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오늘은 조금 많이 힘들었다. 내일은 오전 출발인데, 상태를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기권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잘 모르겠다. 컨디션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005년 KPGA 투어에 입성한 박상현은 통산 14승을 거둔 레전드다.

2023년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며 KPGA 투어 최초로 통산 상금 50억 원을 돌파했다. 지난 시즌 ‘KPGA 투어챔피언십 in JEJU’까지 총 235개 대회에 출전해 58억9372만4057원의 상금을 벌어들여 통산 상금 60억 원까지 1억627만5943원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KPGA 투어 17개 대회에 출전해 ‘동아회원권그룹 오픈’과 ‘KPGA 투어챔피언십 in JEJU’에서 우승하며 2021년 이후 4년 만에 한 시즌 다승이자 20년 만에 KPGA 투어 40대 다승 기록을 만들어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올 시즌 목표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지난 겨울, 전지훈련도 안 가고, 클럽도 잡지 않고 계속 PT(Personal Training)만 받았다(그는 오프시즌 때 오랜 시간 클럽에 손을 대지 않는 루틴이 있다). 몸만 신경 썼다. 통산 상금 60억 원? 언젠가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제일 큰 목표는 아프지 않고 골프 치는 것이다. 그런데 개막전부터 이렇게 무너지니까 속상하다. 건강하게 플레이하는 것,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건 내가 아직 (실력으로 봤을 때) 변별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7일 2라운드.

박상현은 밤사이 더 심해진 통증 탓에 끝내 기권을 선택했다. 오전 8시20분 출발 예정이던 그는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티오프 시간에 맞춰 10번 홀로 이동해 동반자인 함정우, 김홍택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양해를 구했다.

박상현은 “평소와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골프장에 나왔는데 , 너무 힘들었다. 오늘은 정말 경기에 나서지 않는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그래도 동반자들에게도 직접 이야기하는게 예의일 것 같아 10번 홀 티 박스에서 상태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다음 주 경기 출전 여부도 좀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전한 그는 “최대한 빨리 회복해 다시 팬들 앞에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상과 싸우면서도 꿋꿋이 버티며 여전히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43세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졌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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