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벚나무 아래 야단법석

요즘 벚나무 아래는 이런저런 공부하기 좋은 교실이다. 우선 문학에 대한 것. 꽃잎이 어디 세 번만 낙하하랴. 가지에서 떨어지고, 공중에서 흩날리고, 마음에 앉았다가 바닥에서 미끄러져 종내에는 아래로 녹아 들어간다. 지금 조경석 위에 앉아 돌에 바깥 구경시켜 주는 꽃잎들. 물과 불의 거대한 순환에서 벗어나 잠시 쉬는 중인가. 이 사태를 알맞게 번역하는 한 구절을 발굴하여 낙엽과 꽃잎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모처럼 형제들과 서대문 안산 나들이. 간밤의 봄비에 벚꽃이 절정을 지나니 그래서 더 흔감하다. 하늘보다 더 가까운 땅에 꽃잎이 눈처럼 쌓였다. 야외무대에선 추계예술대학생들의 봄빛 축제 공연. 벚나무 아래의 음악 공부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 가곡 ‘명태’의 중후한 음성에 녹슨 귀를 닦으며 바닥에 착지하는 꽃잎을 본다. 나무와 함께하는 수학 수업으로 넘어간 것이다. 세상은 인수분해를 참 우아하게 하는구나. 정교하게 결합된 세계는 이별도 이렇게 예술이다. 한 조각 꽃잎이 괄호처럼 대지를 여니, 우리더러 다음 괄호를 닫으라는 것.
벚나무 객석에서 잠깐, 과학도 만났다. 트럼프를 업고 네타냐후가 일으킨 명분 없는 전쟁 사이 달의 이면을 육안으로 최초로 본 ‘아르테미스’가 지구로 귀환했다는 뉴스. 빨간 낙하산을 꽃잎처럼 펼치며 우주선이 태평양에 풍덩, 개화하고 있다. 뒤이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심금을 울렸던 할머니께서 맞교대하듯 허공으로 떠났다는 소식. 그 영화에서 고인은 할아버지와 코스모스 꽃밭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셨지. “꽃이고 나뭇잎이고 다 사람과 똑같아요. 저 나뭇잎도 봄이 되면 피어서 여름 내내 비 맞고 잘 살다가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그만 떨어진단 말이야. 사람도 그것과 한가지래요.”
참 고약한 자들이 못나게 굴어도 사시(四時)는 명확하다. 꽃은 제자리에 달리고 달은 눈썹을 두드리며 저녁에 뜬다. 가장 먼 우주까지 간 탐사선의 궤도를 좇다가 물리학의 방정식에 새삼 탄복하다 돌아보느니, 벚나무 아래 꽃잎 옆에 모인 우리 형제도 어머니한테서 떨어진 가장 가까운 별이 아니랴.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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