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 조연들이 연대를 시작한 계기

노동의 표정에 대해 의식적으로 글을 쓴 지가 2년 4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작업한 것을 돌아보면 텍스트 표면에 드러난 노동의 표정에 무게를 두었던 것 같다. 모든 텍스트를 대상으로 작업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3년 정도 반복한다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 이론화 작업과 집필 작업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8년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될 듯하다.
그런데 흩어진 노동의 표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연대'라는 단어가 맴돈다.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연대를 해온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당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 질문은 노동의 표정을 쫓아 두툼한 책을 기획하고 싶은 내 마음에 진정성이 있는지 묻게 한다. 그러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침묵하지 않았는지 멈칫하게 된다.
실제로도 내 작업은 현장에서 숨쉬기보다는 주로 앉아 있는 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행위 한 '연대'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연대의 '계기'를 고백한 예술가의 표정을 찾기로 했다.
<음악의 사생활ㅡ신승은>(2023)은 이런 방식으로 읽은 첫 텍스트다. 그는 처음엔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시위(투쟁)하는 사람들을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두렵고 낯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콜트콜텍' 노동자를 위한 '연대문화제'에 참석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공연 이후, 보지 못한 가장자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일 테다.
낯설었다는 점에서 이 고백이 내 표정과 비슷한 것 같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찾게 되었다. 대체 어떤 투쟁이었기에 예술가 한 명의 마음을 바꾸게 했는지 그곳의 노동자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당시 해고 노동자 중의 한 명이었던 고 임재춘의 투쟁일기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2016)를 읽게 되었다. 이들의 투쟁은 2007년에 시작해 2019년 '합의금' 형식의 위로금을 받는 조건으로 합의할 때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영역의 예술가가 참여해 그곳의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이 텍스트에서도 '연대'가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한 번 나온다. 이 책을 함께 쓴 최문선에게 누군가가 '당신은 해고자도 아닌데 왜 그곳에서 연대'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의 대답은 예상외로 간결하다. 사사로운 인정 욕망은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해관계도 대단한 의지도 갖추지 못한 채 습관처럼 해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해고자도 아닌 내'가 '해고자와 함께 하는 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뮤지션 신승은의 발언과 닮았다.
콜트콜텍 노동자의 표정을 그린 미술가 전진경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수요일 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2024)와 <빈 공장의 기타 소리>(2017)를 농성 천막 작업실에서 작업하며 노동자의 표정을 두 권의 텍스트에 담았다. 처음엔 "여기서 예술을 하면 멋진 게 나올 거야"라는 마음이었지만, "아저씨들 손에 들린 팻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2019년 마지막 농성장에서 고 임재춘의 '고맙다'는 말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이 예술가들은 나와 동기도 몸도 시작도 아주 다르다. 하지만 몸이 그곳으로 갔다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를 계속 작업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에서 최문선에 의해 언급된 이란희 감독의 말처럼 연대하는 사람들은 한 편의 영화 속 주연과 조연처럼 자연스럽게 머물고 떠나는 존재인지 모른다. 내게 연대는 무엇인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부조리하게 해고된 부산 서면시장 허진희, 김태경 두 노동자는 봄날에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다.
/문종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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