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는 오늘도 똥을 푼다

공무원을 준비하던 내게 아버지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무원이 되거든, 똥 푸는 공무원이 돼라" 그 말은 어린 나에게 낯설었고 솔직히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왜 하필 '똥을 푸는 공무원'일까. 그때는 그냥 나를 놀리는 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내가 공무원이 되어 일하다 보니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조금씩 그 뜻을 알 것도 같았다.
예전의 공무원은 주민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했다고 한다. 마을의 위생을 위해 분뇨를 퍼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누구나 하려고 하지는 않는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똥을 푼다'는 것은 더럽고 힘든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1999년 청원군보건소 계약직으로 공직에 발을 들였고 2003년 청주시청에 정식으로 임용돼 지금까지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별일이 다 있었다. 민원도 많았고, 마음 상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버텨왔다.
그 과정 속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2015년, 의약관리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치과의원 인허가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행정의 실수는 결코 가볍지 않기에 그 책임의 무게는 고스란히 나에게 쏟아졌다.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던 그때, 팀장님이 내게 물으셨다. "치과 하나 차리려면 얼마나 들어?""7억 정도 듭니다" 잠시 생각하시던 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3억 5천 있냐? 나랑 너랑 반반씩 물어내자"그 말은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잘못은 내가 했지만, 책임을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겠다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그 순간 나는 '함께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조직에서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어떤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깊이 느꼈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는 팀장의 자리에 서 있다. 문득문득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그때의 팀장님처럼 직원들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있는 사람일까. 혹시 나도 모르게 책임을 아래로만 내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괜찮아, 앞으로 그렇게 하면 되지"
공무원의 일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잘해도 티가 안나고, 문제 없으면 더 그렇다. 그래도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보이지 않는 데서 누군가의 짐을 덜어주고, 때로는 함께 짊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직생활의 마중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오늘도 그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뇐다. "똥 푸는 공무원이 되어라"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하는 말이 됐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이끌어갈 가장 단단한 약속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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