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구석구석 찾아가 유적유물 조사,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겨 [주민들이 지켜낸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3)]

조재영 기자 2026. 4. 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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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으로 공유하는 문화유산

1995년 왕궁지 조사 한계 느껴
체계적인 연구 필요성에 공감

학예연구사 강의 듣고 공부
수차례 현장 답사 열의보여
군민 모금 통해 보고서 펴내

1990년대 사라지던 고인돌
직접 보고 검증 후 책 내고
문화유적분포지도 만들기도
마을 지명 관련 연구도 성과

유네스코는 2023년 9월 17일 오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함안 말이산고분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말이산고분군이 세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역사적 순간'의 밑바탕에는 수십 년 동안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해 함안지역 문화유산을 꿋꿋이 지켜온 지역 시민단체의 노력이 깔렸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지역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함안군민들과 연대하며 뚜벅뚜벅 걸어온 길을 4회에 걸쳐 조명하고자 한다.

가야는 거대한 고분과 성,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찬란했던 문명을 가늠할 수 있다. 가야는 지금도 '신비의 제국'으로 불린다. 한반도 남부에서 500년 넘게 번성하며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꽃피웠음에도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야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으로만 존재한다. 분명히 가야에도 기록이 존재했을 테지만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신라에 병합되는 과정이나 그 이후로 기록이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함안군 전역을 찾아다니며 조사해 발간한 책자. 왼쪽부터 안라국고성, 함안고인돌, 안라고분군, 문화유적분포지도. /함안군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아무리 값진 문화유산이라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것을 지키기도 어렵고, 후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함안군 내 유적을 하나하나 찾아내 조사하고 기록하기로 했다.

연구회는 설립 초기부터 아라가야 왕궁지를 찾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초대 정현규 회장이 왕궁지가 있을 것으로 지목한 가야읍 가야리 일원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으나 뚜렷한 흔적을 확인하지 못했다.

1995년 12월 15일 열린 월례회에서 왕궁지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왕궁지의 실체를 이해하려면 주변 산성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이들 산성과 왕궁지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전에 여러 차례 아라왕궁지와 봉산산성을 답사했지만, 체계적인 조사필요성에 모두가 공감했다.

이후 연구회는 매주 일요일마다 산성을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이주헌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성곽의 축성 방법과 특징, 조사 방법 등을 교육했다. 연구회는 칠원산성으로 향했다. 험한 지세에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어서 애를 먹었다. 그래도 회원들은 배운 대로 열심히 조사했다.

조사는 동지산성, 함안읍성, 파산봉수, 성점산성, 문암산성, 방어산성, 포덕산성, 안국산성, 성지봉산성, 칠원읍성, 고종산성, 대현관문, 성산산성, 검단산성 등으로 이어졌다. 조사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조사가 부족하다 싶으면 수차례 현장으로 찾아가 조사를 이어갔다. 산성, 읍성, 봉수대, 관문, 왕궁지 등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지면서 아라가야의 방어 체계와 공간적 윤곽이 드러났다.
조희영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회장이 보관하고 있는 방대한 문화유적 유물 조사 자료 중 일부. /조재영 기자

연구회는 조사 결과를 책으로 발간하기로 했다. 산성조사보고서발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안라국고성' 발간 편집회의를 개최했다. 책 발간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또 다른 과제였다. 연구회는 함안군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금 모금에 군민 200여 명이 동참했다. 742만 원이 모였다. 이는 군민들도 문화유산 보존운동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할 뜻이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연구회는 큰 힘을 얻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함안 출신 재일교포가 설립한 '해남장학재단'에서 학술연구비로 500만 원을 지원했다.

'안라국고성'은 수년에 걸친 현장 조사, 학술 자문, 군민 성금모금 참여를 통해 발간됐다. 이 책은 단순히 정보를 나열한 자료집이 아니라 아라가야의 방어 체계를 복원하려는 시도였고, 연구회가 '답사 단체'에서 '연구 주체'로 거듭나는 이정표가 됐다.

함안에는 유난히 고인돌이 많다. 이들 고인돌은 논 한가운데에도 있었고, 민가의 담장 일부로도 존재했다.

조희영 회장은 "우리 지역 소중한 유적과 유물이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없어지거나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며 "농사 편의를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고인돌을 없애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라도 빨리 고인돌을 조사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이주헌 학예연구사가 도움을 주었다. 1996년 4월 14일 이주헌 학예연구사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고인돌 조사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시연까지 했다.

이후 회원들은 여름 무더위와 겨울 칼바람과 싸우며 함안군 내 곳곳에 분포한 고인돌을 조사했다. 회원들은 1996년 가야읍 광정리, 구락실, 도동, 함안면 봉성리, 북촌리, 괴산리, 군북면 사촌리, 동촌리, 덕대리, 명관리, 대산면 서촌리, 하기리, 구포리, 칠원읍 오곡리, 예곡리, 용정리, 운서리 고인돌을 조사했다. 또 1997년에는 가야읍 삼기마을, 군북면 중암리, 오당골, 법수면 석무, 대산면 기동마을 선돌을 조사했다.
1996년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함안군 군북면 동촌마을에서 고인돌을 조사하고 있다. 왼쪽이 이순일 부회장, 오른쪽이 조희영 회장이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조사 결과를 놓고 이주헌 학예연구사와 일본 학자 야마다 다카후미 선생(山田隆文·가시하라고고학 연구소)이 조사도면과 실물 대조 확인 작업을 했다. 또 최석규 함안종합고(현 함안고) 교사가 고인돌 재질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현장 조사와 학술 검증을 통해 기록은 더욱 정확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함안 고인돌>이었다.

책 발간 이후 박창범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함안 고인돌을 탐사하기도 했다. 함안 지역 일부 고인돌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 교수는 <함안고인돌>이 전국 고인돌 조사 자료 중 비교적 잘 만든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구회는 학계에서 발표한 아라가야 관련 논문을 모은 <안라국관련논문집>도 발간해 군민들에게 배포했다. 1997년 11월 연구회는 군에서 보조금 300만 원을 지원받아 2000부를 인쇄해 군민들에게 배포했다.

함안군에는 군북면 28개소, 가야읍 15개소, 산인면·함안면 13개소 등 90여 개소에 고분군이 분포한다. 이들을 조사해서 수록한 책이 <안라고분군>이다. 이 책은 사라져가는 아라가야의 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000년에는 국내 민간단체 중 처음으로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간했다. 급속한 개발 압력 속에 시시각각 사라져가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보호하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연구회가 중심이 되고,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군 전역에 산재한 문화유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료화했다. 군이 3000만 원을 지원하고 연구회가 2000만 원을 마련해 책을 발간했다.

연구회는 책자가 제작되자 함안군청과 지역 설계사무소 등에 분포지도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관련 교육을 했다. 이를 통해 함안지역에서 진행될 각종 개발사업이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사전에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러한 문화유적 분포지도 제작은 2001년 문화재청 주도로 전국 문화유적 분포지도 제작사업이 이루어지기 이전 지역주민이 주도해 조사하고 책을 발간한 첫 사례로서 큰 의미가 있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가 1996년~1997년 함안군 전역 고인돌을 조사한 자료.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문화유산 기록을 디지털화해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커졌다. 군내 문화유적 자료와 동영상을 CD에 담기로 했다. 함안군과 협의를 거쳐 1999년 12월 제작에 들어갔다. CD는 1·2편으로 나눠 만들었다. 1편에는 함안군 소개, 고인돌을 통해 본 함안의 역사, 고인돌의 역사적 의미, 아라가야의 형성과 발전, 유적과 유물로 본 아라가야의 문화, 일본으로 건너간 아라가야인 문화를 담았다. 2편에는 고분군(남문외고분군 외 89개소), 고인돌(광정리고인돌 외 36개소), 도요지(장명도요지 외 2개소), 산성(봉산산성 외 13개소), 왕궁지, 유물(유자이기 외 47점), 발굴된 고분군(말이산고분군 외 3개소) 등을 수록했다. CD는 2000년 5월 제작해 학교와 군민들에게 나눠주었다.

마을 이름과 지명은 많은 것을 품고 있다. 그 지역의 역사와 특징을 반영한다. 하지만, 마을 이름이 변하고, 지명이 점차 사라져갔다. 그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사라지면 그 명칭도 사라지고, 명칭이 사라지면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 더 늦기 전에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연구회는 2019년 조근제 군수를 찾아가 사업 필요성을 설명했다. 조 군수는 흔쾌히 연구회의 뜻에 동의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연구회는 2019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심층 조사를 했다. 2001년~2003년에 해놓은 기초조사가 바탕이 됐다. 마을을 찾아가 노인들을 면담하고, 옛 지도와 문헌을 대조했다. 행정 지명이 바뀐 부분도 짚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마을 땅이름'이라는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과거부터 전해온 '아라가야' 기록은 귀하지만, 지금 세대가 후대에 전할 기록은 풍부해진 셈이다.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의 노력과 함안군민들의 지원 덕분이다.

/조재영 기자주민들이 지켜낸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

(1) 문화유산 보호운동의 시작

(2) 유산 보존을 위한 고군분투

(3) 기록으로 공유하는 문화유산(현재 기사)

(4) 민관 인식까지 바꾼 주민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