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보이지 마라"...포항의 눈물과 광양의 웃음

김대호기자 2026. 4.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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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편집국장

전직 국가직 고위 공무원이 4, 5년 전 전남도와 광양 등 지자체 공무원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그들 사이에 "포항이 우리 대신 투자유치를 해주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 감사 인사가 돌았다고 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출신지를 밝히지 않은 채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씁쓸한 기억으로 회고했다.

심지어 포스코의 대규모 투자가 전남에 집중되자 지방의회에서 조차 "포항 사람들 보기 미안하니 표정 관리해라, 이빨 보이지 마라"며 서로 입단속을 했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물론 전해지는 과정에서 과장과 윤색이 더해 질 수도 있으나 맥락만으로도 경북 포항 시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박탈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2014년부터 2026년까지 이어진 전임 이강덕 포항시장의 재임 기간,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철강왕' 박태준의 혼이 서린 경북 포항은 지진과 힌남노 등 난관을 겪은 데 이어 산업지형이 크게 위축되면 도시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지역 일반인들에게서 조차 "이미 포스코의 미래 먹거리인 이차전지 투자가 포항이 아닌 전남 광양으로 대거 유출됐다"는 개탄 섞인 목소리가 확산하면서 포항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지역 소멸'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다.

포스코의 투자 데이터를 보자.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포스코가 포항에 약 5.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나, 이 중 3.6조원(약 70%)은 기존 철강 설비 유지보수에 편중되어 있다. 반면 미래 신성장 동력인 리튬 배터리 소재 분야 투자는 1.6조원에 불과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남 광양은 '미래 소재의 메카'로 급부상했다. 포스코는 2023년부터 2033년까지 광양에 4.4조 원을 투입해 이차전지 소재, 수소, 니켈 정제 등 신산업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포스코퓨처엠은 2022년 광양에 연 9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종합 준공하며 '마더 팩토리' 지위를 부여했다. 반면 포항의 양극재 공장은 2025년에야 10.6만t 규모의 준공이 예정되어 있어 속도 면에서 이미 광양에 주도권을 내줬다는 평가이다.

포항의 투자 유출 배후에는 전임 이강덕 시장과 최정우 전 포스코 회장 간의 극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이른바 '포항의 잃어버린 6년' 동안, 시정과 기업의 관계는 협력이 아닌 대결로 점철됐다. 지주사 포스코홀딩스의 본사 소재지 이전과 미래기술연구원 설립을 둘러싼 '무늬만 포항 논란' 은 갈등의 정점이었다.

포항시가 포스코를 '길들이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하고 시민 단체를 동원해 압박하는 사이, 전남은 국가산단 규제 완화에 발맞춰 포스코의 투자를 공격적으로 흡수했다.

철강 산업의 위기 속에 포항의 산업 다변화는 절실하지만 기업은 불확실성과 갈등을 기피한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행보와 기업 간의 불협화음은 결과적으로 수조 원대의 미래 가치를 타 지역으로 떠넘기는 자충수가 됐다. 전남 포스코의 투자로 '표정 관리'를 하는 동안, 포항 시민들은 활기를 잃어가는 산단을 바라보며 지역 경제의 몰락을 체감해야 했다.

2026년 전임 이강덕 시장의 임기가 끝나고 6월 3일 지방선거를 거쳐 7월 새로운 포항시장이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경북 포항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기업이 없는 도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외면한 채, 정치가 경제를 압도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포항은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지금 포항에 필요한 것은 '투쟁의 현수막'이 아니라 기업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는 '혁신의 레드카펫'이다. '표정 관리'를 하는 전남의 미소 뒤에 가려진 포항의 눈물을 닦기 위해선, 지난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상생의 길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김대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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