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혁신의 현장에 자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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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누리는 반도체 산업의 번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내다본 민간기업의 선제적 투자와 불굴의 의지가 오늘의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연구원 출신 경영인으로서 현장을 살피다 보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며 내뿜는 에너지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10년 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코스닥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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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누리는 반도체 산업의 번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황무지 같던 시절,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명운을 건 선구자들이 있었다. 미래를 내다본 민간기업의 선제적 투자와 불굴의 의지가 오늘의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 위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폭증은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기술 패권 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은 천문학적 지원과 과감한 규제 완화로 자국 산업을 ‘국가 총력전’ 체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연구원 출신 경영인으로서 현장을 살피다 보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며 내뿜는 에너지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이런 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규제로 인해 스스로 속도를 늦춰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다.
과거의 성공은 과감한 투자와 유연한 조직 문화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지금의 첨단 연구개발(R&D) 현장은 획일적인 ‘주 52시간 상한’에 갇혀 몰입과 창의의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연구개발은 정해진 시간에 산출물을 찍어내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연속성과 몰입이 생명인 창의적 과정이다.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고도의 몰입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현장에서 강제적인 멈춤은 흐름을 끊는 것을 넘어 연구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연구실의 불이 꺼지는 이유가 자발적 휴식이 아니라 법정 상한 때문이라면 혁신의 엔진도 그 순간 멈춘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실제로 한 코스닥 반도체 설계 기업 대표는 “미국 고객사와 협업할 때 시차 탓에 야간 화상회의가 필수지만 52시간 제한 때문에 탄력적 대응이 불가능하다. 결국 일정이 지연되고 경쟁에서 밀린다”고 토로한 바 있다. 글로벌 경쟁사들이 국경 없는 기술 전쟁터에서 사력을 다해 질주할 때 우리 기업들만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며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이런 경직성은 사실상 한국에만 존재한다. 미국은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연구 인력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적용해 법정 근로시간 및 초과근로수당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일본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해 성과 중심의 평가 틀을 마련했고 유럽조차 주 48시간 상한 속에서도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 유연성을 허용한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되 속도가 생명인 첨단산업에는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다.
물론 장시간 노동을 막는 제도의 취지는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연구 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탄력적 근로 체계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연구개발 전담 인력에 대해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과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 연구직에는 자율적 근로시간 운영을 인정하되 연간 총 근로시간 상한이나 건강검진 등 필요한 안전장치를 병행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땅 위의 공장을 넘어 연구실의 불빛 속에서 결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불빛을 일률적 규제로 끄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연구자의 건강을 지키는 ‘균형 잡힌 제도’다. 우리가 주저하며 규제의 틀에 갇히는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이 앞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10년 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과 코스닥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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