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번의 계절이 지나도"…국화 띄운 바다에 번진 그리움(종합)

김혜인 2026. 4. 1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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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2주기 선상 추모식…맹골수도 참사해역서 유가족 추모·헌화
팽목항·목포신항도 추모 행렬 이어져…"아픔 그대로"
참사해역 찾은 세월호 가족 (진도=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참사해역에서 열린 선상추모식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이 국화를 참사 해역으로 던지기 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2026.4.16 [공동 취재] in@yna.co.kr

(진도=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12년이 아니라 억만번의 계절이 지나도 너희는 영원히 우리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다. 먼 훗날 이 슬픔이 다 씻겨 내려갈 그날에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목포항에서 3시간 30분가량 항해 끝에 도착한 진도 맹골수도 세월호 참사 해역.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 속에서 시작된 선상 추모식에서는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김빛나라 양의 아버지 김병권 씨의 슬픈 추도사가 바닷바람에 실려 퍼졌다.

곧이어 39명의 유가족은 갑판에 마련된 벚나무 조형물에 그리움을 담은 노란 리본을 하나둘 매달기 시작했다.

"다해야 보고 싶고 사랑해♡", "거긴 어때, 잘 지내지?" 등 리본에 적힌 짧은 문장들에는 차마 다 담지 못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참사 해역 지점을 알리는 노란 부표 주위를 배가 천천히 맴도는 가운데 헌화 시간이 다가오자 유가족들은 국화를 가슴에 꼭 끌어안거나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갑판 끝으로 향했다.

가족들은 난간 앞에서 흰 국화를 바다로 던졌고 손을 놓은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리운 이름을 하나씩 불러나갔다.

"거기서 뭐 하니, 돌아오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말하면 닿을까 싶어 차마 끝맺지 못한 말들이 낮게 이어졌다.

손을 떠난 국화 한 송이는 바람에 흔들리며 물 위에 내려앉았고 그 주변으로 또 다른 국화 십수 송이가 잇따라 떨어지며 수면 위로 번져갔다.

자식의 이름을 부르다 목이 잠긴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거센 바람 속에 묻히듯 이어졌다.

얼굴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고 하얀 장갑은 젖어 투명해지기도 했다.

"또 올게"라며 바다에 약속을 건 이가 있는가 하면 추모식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부표만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다시 돌아온 12번째 봄 (진도=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참사해역에서 선상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2026.4.16 [공동 취재] in@yna.co.kr

이날 처음 선상 추모식에 참석한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최수희 양의 아버지 최준헌 씨는 "처음 선상 추모식에 참석했다. 2012년 작은딸을 병으로 잃고 세월호로 큰딸마저 잃어 10년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마음센터에서 신경을 많이 써준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딸 앞에 설 수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진도군 팽목항과 세월호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에도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팽목항에서는 노란 리본이 그려진 빨간 등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추모객들은 그 주변을 천천히 돌며 그날의 기억을 되짚었다.

순천에서 딸과 함께 팽목기억관 분향소를 찾은 김은화(49) 씨는 "12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딸도 같은 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며 "내 딸은 다행히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고 부모들만 고통을 떠안게 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도 많은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지만,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에 적힌 메시지를 유심히 읽거나 휴대전화로 선체를 찍으며 12년의 세월을 되새겼다.

아버지와 함께 선체를 바라보던 김재삼(45) 씨는 "살고 있는 곳이 진도군 조도라 사고 해역과 가까워 선체나 팽목항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며 "매년 참사 주기가 다가오면 이곳이나 팽목항을 찾는데 12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에는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목포기억식'이 열려 추모의 시간이 이어졌다.

선상 추모식에 참석했던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이태원·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과 시민 등 300여명이 함께했다.

노란 모자를 쓰고 각 참사를 상징하는 색의 조끼를 입은 참석자들은 기억사와 추모사에 귀 기울이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유가족 최준헌씨가 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기억사를 읽자 일부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이어 참석자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적힌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헌화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약속을 되새겼다.

박현숙 세월호잊지않기목포지역공동실천회의 상임대표는 "1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날의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있다"며 "진실이 인양되고 책임자가 처벌받는 그날까지 우리는 결코 세월호와 작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팽목항에 모이는 추모 발걸음 (진도=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세월호 참사 12주기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추모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6.4.16 [공동취재] in@yna.co.kr

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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